아침 출근한 지 채 한 시간이 흘렀을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날아든다. "고객님은 최우량 신용등급으로 무방문 당일 2000만원 대출 가능합니다. "(○○캐피탈) ○○이란 상호는 굴지의 시중은행 이름과 같다. "고객님의 신용등급이 상향돼 현금서비스 한도가 높아졌습니다. "(○○신용카드) 오후에 이메일을 검색하다가도 비슷한 메시지를 보게 된다. "전화 한 통이면 바로 1000만원까지 입금해 드립니다. "(○○금융)

퇴근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게시판에도 대출 광고전단이 붙어 있다. "연 4%대 주택담보대출 가능" '최저'라는 말은 눈을 부릅뜨고 봐야 찾을 수 있다. 문구는 ○○은행이나 △△보험사와 비슷하다. 저녁을 먹은 뒤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대부업체 광고와 맞닥뜨리게 된다. "xxxx-빨리십분 대출은 ○○○." "△△! △△! △△머니~." 30분에 한 번씩 나오다 보니 애들은 외울 정도다. '빚 권하는 사회'다.

한 장관급 인사는 개탄을 금치 않는다. "대학생인 아들이 은행 이름은 몰라도 대부업체 전화번호는 다 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대부업체는 떼돈을 벌고 있다. '러시앤캐시'로 알려진 에이앤피파이낸셜은 지난해 146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산와머니'브랜드를 쓰는 산와대부의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1420억원에 이른다. 전북은행(612억원)의 2.5배에 이른다. 두 대부업체의 대부잔액은 2조원 수준으로 전북은행 자산(10조원)의 20% 수준이다.

캐피털업계도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업계 1위 현대캐피탈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3540억원에 이른다. 지방은행은 물론 SC제일은행(2492억원) 한국씨티은행(2896억원)보다 이익이 더 많다.

대출을 주 업무로 삼는 제2금융권 회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금리를 적용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 신용등급이 1~5등급으로 은행을 가면 연 10% 아래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대부업체나 캐피털업체에 가면 연 20%를 훌쩍 뛰어넘는 금리를 내야 한다. 대부업체 등은 '빠른 대출'과 더불어 '짧은 만기'라는 무기를 내세워 고금리를 위장한다. 예를 들어 연 30%의 금리라 해도 한 달만 쓴다면 단순금리는 2.5%에 그쳐 고금리를 체감하지 못한다. 200만원을 한 달간 연 30%에 쓸 경우 한 달 이자는 5만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출금리는 확실하게 양극화됐다. 은행이나 보험사와 거래하면서 한 자릿수 금리를 내는 사람과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연 20~30%를 내는 층이다. 후자엔 대학생과 사회초년병이 대거 속해 있다. 연 10%대 대출금리를 내는 중간층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회가 건전하려면 중간층이 두터워야 하듯 금융 건전화를 도모하려면 중간 금리를 적용받는 층이 늘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은행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은행은 현재 6등급 이하에겐 웬만해선 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연10%대가 가능한 6~8등급 고객을 위한 업무를 은행이 해야 한다. 은행이 바로 하기 힘들면 자회사를 세워 하면 된다. 은행이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면 은행장이 김치 담그고 사진찍는 데 신경쓸 게 아니라,고금리 대출자를 줄이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박준동 경제부 차장 / 금융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