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청춘을 안 아프게 해준다고?
1년간 512쇄,판매량 130만부.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얘기다. 타깃인 20대는 물론 고교생부터 30대까지 필독서다. 중국 일본 등 7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란도샘'(김 교수의 애칭)은 멘토의 대명사가 됐다. 비결은 훈계나 당위론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청춘의 좌절과 실패,방황부터 털어놨다.

기성세대의 경험 · 경륜이란 것도 사실은 무수한 실수와 오류를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것이다. 그래서 란도샘은 조언한다. 인생 80년을 24시간으로 환산해 보라.스물넷은 고작 아침 7시12분,막 집을 나서려는 순간이다.

청춘은 아프다. 정말 아프다. 원하는 대학만 가면 다 될 줄 알았다. 부모 등골 빼가며 공부하고,열심히 스펙도 쌓았다. 결과는 입시보다 몇 배 더 치열한 취업전쟁이다. 이룬 것도,가진 것도 없다. 젊기에 당연하지만 꿈마저 잃는 것은 참기 힘들다. 안 아프면 청춘이 아닌가 보다.

고통의 뿌리는 무엇보다 일자리다. 20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시대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PIGS 국가들이 모조리 정권이 갈린 원인도 청년 일자리다. 월가 점령시위도 마찬가지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21세기판이다.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정권은 좌파든 우파든 존립이 어렵다.

위로가 절실한 청춘들에게 안철수 · 박경철의 '청춘콘서트(청콘)'는 빅히트 상품이 됐다. 아픈 곳,저린 곳을 정확히 짚어냈다. 김제동의 '청콘 2.0'도 히트 조짐이다. 정치개그 '나꼼수'까지 더했으니 선거는 보나마나다. 청춘이 아픈 줄 모르는 한나라당이,아프냐고 물어봐주는 야권을 이길 턱이 없다. 뒤늦게 '드림토크'라는 짝퉁을 내놔 또 한번 큰 웃음을 줬다.

청춘은 지금 세상을 욕하고,난장판 정치를 조롱한다. 당장 카타르시스를 얻겠지만 그게 전부다. 청콘이나 나꼼수가 일자리를 만들어줄 리 만무하다. 백날 쫓아다녀도 처지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은 더 가혹하게 다가올 뿐이다.

두 달여 동안 청춘의 고민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한경미디어그룹의 수습기자 채용 서바이벌 대회인 '나는 기자다'를 진행하면서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스펙은 안 본다는 대회 취지를 지원자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저질 스펙에 나이도 많은데 될까" "내가 탈락하면 스펙 탓으로 여기겠다"는 자기소개서도 있었다. 흥행을 겨냥한 쇼라는 비난도 나왔다.

본선에 이어 지난 주말 최종 결선을 치렀다. 발로 뛴 기사만 놓고 평가한 결과 비명문대 · 지방대 출신이 대거 결선에 올랐다. 아직도 그들의 토익점수를 모르고 부모 직업은 더더욱 모른다.

청춘들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꼼수가 없는 사회다. 하지만 기피하고 싶은 공개경쟁이 그 어떤 방식보다 꼼수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구직경로에서 연줄 빽 등 인맥 의존도가 60%에 이른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 그 방증이다.

청춘을 안 아프게 해주겠다는 정치인들이 득세한다. 그들이야말로 꼼수다. 세상이치를 호도하고 남탓만 전파한다. 정치 입지를 넓힐 찬스로만 본다. 그런 강남좌파의 자식은 미국에 가 있고,고관대작의 자식은 외국계 금융사에 취업한다. 아프지 않은 청춘은 허상이다. 진실성 없는 이상을 배운 젊은이들이 현실에 직면했을 때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말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