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부모가 70세 아들에게 집 물려준다?…이젠 생각 바꿀 때"

강성모 소장
55세 이후엔 안전자산 투자? 평균수명 80세시대 때 얘기


강창희 소장
근로자 배제된 퇴직연금 논의…노후 · 은퇴설계 교육 강화해야


김재칠 실장
특정상품 세제혜택으론 한계…계좌단위 시스템 도입해야


김철배 본부장
펀드 투자기간 평균 2년도 안돼…10년 이상 장기자금 들어와야


우재룡 소장
기존 생활 유지해선 대비 안돼…생활비 줄이는 노력 뒤따라야


"100세 부모가 70세 아들에게 집 물려준다?…이젠 생각 바꿀 때"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집값과 자녀 교육비 등에 치여 노후 준비에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젊어서부터 장기 투자를 통해 차근차근 노후를 대비하자는 취지로 지난 9월 초와 이달 초에 걸쳐 '100세를 위한 습관,장기투자' 시리즈를 게재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은퇴설계 전문가들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4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장기 투자를 통해 은퇴설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세제를 개혁하고 개인들은 일찍부터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완 차장(사회)=1999년 바이코리아펀드 열풍에서 자문형랩까지 반복되는 쏠림 현상이 장기 투자의 주요 걸림돌로 지적받습니다. 이런 현상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강창희 소장=투자자들이 목적을 정하지 않고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합니다. 미국 등은 다릅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취업한 젊은이들조차 노후 대비를 투자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30년에 걸친 투자가 가능합니다.

▼김재칠 실장=업계도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나타나는 쏠림 현상의 특징은 상품군이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예금에서 펀드로,다시 자문형랩으로 옮겨가는 식입니다. 헤지펀드가 나오면 또 거기로 자금이 몰릴 것으로 봅니다. 상품 중심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재룡 소장=상품의 다양성 부족보다 서비스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보편적인 상품을 개개인의 리스크 성향과 투자계획에 맞게 차별화해서 제공합니다. 반면 한국은 상품 판매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재무상담 기능이 떨어지는 탓이죠.

▼사회=장기 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 소장=베이비부머 세대 1500명 중 20년 이상 퇴직연금을 납입해 은퇴 후 연금을 탈 수 있는 사람을 조사해 보니 3명에 불과했습니다. 한국 투자자들은 단기 투자 성향이 너무 강합니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퇴직연금의 경우 투자금을 연금으로 받는 것보다 일시금으로 타는 것이 세제상 유리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철배 본부장=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김 실장=과거에도 금융상품에 세제 혜택은 많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특정 상품에 국한한 세제 혜택은 한계가 있습니다. 캐나다 등 해외에는 '종합저축계좌'라는 게 있습니다. 직접투자,펀드,은행 상품 등 이 계좌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거래에 대해 계좌 단위로 세제 혜택을 주는 시스템입니다. 국내에서도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도입하는 등 비슷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데 그에 맞는 세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강성모 소장=투자자금을 기관화해야 합니다. 금융투자회사들의 직접적인 대면점이 개인이다 보면 빠르게 변하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단기 상품 마케팅에 집중하게 됩니다. 개인은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이 퇴직연금을 펀드로 운용하는 것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김 본부장=적립식 펀드로 질적인 변화를 기대했는데 대부분이 3년짜리입니다. 그나마 펀드 투자자들의 평균 투자기간도 2년이 채 안 됩니다. 한국시장은 4~5년에 한 번씩 큰 변동성을 보이는데 3년짜리 펀드로는 대응하기 힘듭니다. 개인연금 퇴직연금 학자금펀드 등 10년 이상의 장기자금이 들어와야 합니다.

▼사회=퇴직연금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 소장=조사해 보니 근로자 1인당 퇴직연금을 3000만원 정도 받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퇴직금 제도와 중간정산,강한 규제의 결과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로자들은 퇴직금 혹은 퇴직연금이 노후자금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업계나 정부에서 규제 완화를 부르짖어도 생애설계가 선행되지 않는 한 바뀌기 어렵습니다.

▼김 실장=문제는 소득 수준이나 자금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생애설계를 할 여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는 근로자들은 대개 이를 보너스 정도로 생각합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 중간정산을 통해 끌어다 쓰겠다는 것입니다.

▼강성모 소장=퇴직금 중간정산 허용이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정산제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을 도입한 KT 포스코 등의 사례를 보면 직급이 낮아도 근속연수가 30~40년씩인 퇴직자들은 1억5000만~2억원가량을 받아 갑니다. 내년부터 중간정산이 폐지되고 나면 30대 초반 세대들은 상당한 규모의 노후 위탁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창희 소장=퇴직연금에 대한 논의가 당국과 금융회사,기업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작 퇴직연금을 받는 근로자들은 논의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기업들이 근로자들에 대한 노후설계,은퇴설계 교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김 본부장=젊은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육아와 내집 마련 등 노후 대비를 하기엔 너무 힘든 사회구조입니다. 퇴직연금뿐 아니라 양육비나 집값까지 금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원해줘야 합니다.

▼사회=그래서 학자금 펀드 등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김 실장=그런데 막상 세제 혜택 얘기가 나오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업계 간 이해상충 문제 때문이죠.이런 이해관계를 중재해줄 컨트롤타워가 없습니다. 100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큰 시야를 갖고 이 문제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곳이 필요합니다.

▼김 본부장=공감합니다. 대학생 자녀가 있으면 부모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줍니다. 하지만 학비를 지원해줄 부모가 없어 대출금을 쓸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취업해서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기도 하고 대출금을 못갚아 신용불량자로 빠지는 악순환이 진행 중인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사회=베이비부머 세대가 정년을 맞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노후 대비 조언을 해주신다면.

▼강창희 소장=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부동산은 대개 상속용인데,100세가 돼서 70세 자녀에게 부동산을 물려줄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 소장=베이비부머들도 늦었다고 포기해선 안 됩니다. 주택 규모를 줄여 노후자금을 마련하고,적립식 펀드도 더 납입해야 합니다. 담뱃값 경조비 생활비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기존 생활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사회=추가로 덧붙일 말은 없으신가요.

▼강창희 소장=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는데 리스크를 '위험'으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리스크는 위로도,아래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리스크와 친해져야 합니다.

▼우 소장=장수 시대에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사회활동도 많이 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근심형'입니다. 근심만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고 위축되다 보니 제대로 장기 투자도 하지 못하고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생애설계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