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신용평가 시장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기로 한 것은 현재 상황을 방치했다간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워 신용평가사에 대한 신뢰를 몽땅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삼부토건을 비롯해 LIG건설 진흥기업 등 신평사가 투자적격 등급을 매긴 기업들이 연이어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신평사에 대한 신뢰도는 급속히 추락했다. 투자자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들에 휘둘리는 신평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신용평가시장 어떻기에

국내 신용평가시장은 한마디로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신평사들이 경쟁적으로 기업 신용등급을 올리고 있어서다. 무디스 등 국제신평사들이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회사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신용등급을 받은 기업 중 투자적격등급 비중은 2008년 말 78.8%에서 이날 현재 88.5%로 높아졌다. 이러다 보니 투자자로선 과연 어느 기업의 신용도가 좋은지를 구분하는 것이 모호해졌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하지만 경쟁이 가열되면서 신평사들이 앞다퉈 신용등급을 후하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이라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어떤 변화 생기나

한국금융정보학회가 감독당국에 제출한 개선안은 신평사를 기업들로부터 독립시키자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 산하에 별도의 '신용평가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신평사를 지정하는 '신용평가사 지정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하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신평사 설립을 유도해 경쟁을 촉진하면 신평사의 기업에 대한 수수료 의존도가 낮아질 것으로 금융정보학회는 판단했다. 기업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신평사의 경우 특정 기업에 대한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하고 신용평가가 적정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공시토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신용평가작업을 수행하는 애널리스트 등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주식 애널리스트처럼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애널리스트 자격을 부여해 신용평가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전환사채(CB) 등 주식연계채권을 발행할 때도 예외 없이 신용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