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14일 밤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예정대로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키로 했다. 야당 지도부가 만나주든 말든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밤 10시30분께 서울공항으로 귀국한 이 대통령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으로부터 야당의 면담거부 입장을 보고받고도 국회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야당 지도부가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끝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지난 11일 국회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만남을 거부함에 따라 국회의장실의 중재로 일정을 연기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대통령에게 'APEC 정상회의 기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재협의하고 새로운 제안을 받아 올 것'을 주문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국회 방문 때 야당에 줄 '선물'은 없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러 국회에 가는 것이지,협상하러 가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APEC 회의 기간 중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긴 했지만 한 · 미 FTA와 관련한 얘기는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제 정상회의나 만찬 자리에서 한 · 미 FTA처럼 협상과 관련한 얘기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수석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ISD 재협의에 대해선 "이미 한 · 미 두 나라 간에 FTA 발효 90일 이내에 양측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협의하도록 합의돼 있다"며 "ISD도 우리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언제든지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미국 정부로부터 ISD 폐지를 위한 즉각적 협의를 약속 받아오라'고 고집하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야당 지도부와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 대통령이 굳이 국회에 가겠다는 것은 야당을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여론 환기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점점 약화돼온 한 · 미 FTA 비준 동력을 다시 확보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강행이 야당을 자극해 오히려 정국을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 미 FTA 비준안의 강행 처리 수순으로 해석돼 여야의 협상파 입지를 더 좁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