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필요한 건 '코디네이션 타워'
여러 분야에서 정책 컨트롤 타워 부재를 탓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폐지된 정부 부처들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간 컨트롤 타워가 없어서 그 분야가 홀대받았고,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논리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을 때도,한류의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도 국가적 컨트롤 타워를 세워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처방전이 예외없이 등장했다.

종합적으로 사태를 분석하고,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주체가 관련돼 있을수록 그 필요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컨트롤 타워가 잘못 세워지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의사결정이 집중될수록 이해관계 역시 결집되기 쉽다. 그 결과 정책결정자와 그 주변 1차적인 이해관계자 간의 연계는 강화될지 모르지만,일반 국민이나 기업들이 배제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컨트롤 타워에 '최신의 정보'가 모두 모이고,'최고의 인력'이,'최선의 결정'을 한다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컨트롤 타워에서 내려진 결정이 객관적이지 못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져 외면 받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흔히 최고의 정보와 사람,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분야 '안'이 아니라 오히려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는 기업 세계에서는 이미 상식이 된지 오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충격은 휴대폰 제조업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 모델의 변화로부터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기업들은 늘 보던 사람들이 모인 내부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정보를 찾아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을 분권화하고 위임하면서,동시에 상호 연계된 거미줄 같은 조직구조와 의사결정체계를 만들고,변화에 대응하는 동적 역량 중심의 조직을 지향하고 있다. 과거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요약된 보고서에 근거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사회 각 부문에 이와 같은 개방,협력,연계의 변화 패러다임이 숙성되고 있다. 바야흐로 '개방형 혁신'의 시대가 된 것이다.

국가정책이 기업전략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방향과 역행해서는 그 어떤 정책이라도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리 없다. 지금 각 분야에서 목마르게 주장하는 컨트롤 타워라는 것이 행여나 정보소통의 경로를 정형화하며,의사결정의 권한을 모으고,정책결정자와 1차 수혜자 중심의 폐쇄적인 집단을 만드는 것이라면,개방형 혁신으로 진화해나가는 사회의 발전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닫힌 컨트롤 타워의 부작용 중 하나는 흔히 하위 단계의 미시적 의사결정까지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권한은 속성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가능한 한 확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휘통제부를 연상시키는 과거형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협력과 연계를 강조하는 미래형 코디네이션 타워다. 무엇보다 의사결정을 과감히 위임해 권한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예를 들면 큰 정책 중심의 묶음예산을 활성화해 미시적으로 간섭할 여지 자체를 축소하고,정책 추진 주체가 책임은 분명히 지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책 형성과 집행 과정에서 모든 관계자들 간의 신뢰수준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 오늘 아침과 내일 저녁의 말이 달라지는 저신뢰 사회에서 개방과 협력,연계를 외치는 것은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이정동 < 서울대 科技정책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