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묵힌 '김장독' 적립식 수익률 145%…정기적금의 5배
지난달 늦깎이 결혼에 성공한 금융회사 이영훈 과장(38세)은 10여년 묻혀둔 '김장독 펀드'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 과장의 회사는 직원들이 월 10만원 한도 내에서 연금저축 펀드에 돈을 넣으면 그 금액의 1.5배만큼을 추가 납입해준다. 은퇴 자금 지원 차원이어서 중도 환매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주택 구입이나 퇴사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출을 허용한다.

이과장은 2001년 4월 입사 후 매월 10만원씩 납입했다. 지난 9월까지 10년5개월간 자신과 회사가 넣어온 원금은 3150만원.수익금 2017만원을 더해 평가금액은 5167만원으로 불어났다. 이 과장은 "환매가 자유로웠더라면 10년씩이나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번에 경기도 평촌에 24평(79.3㎡)짜리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흐뭇해했다.

국내 증시 장기 적립식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0년(2001년 11월~2011년 10월)간 국내 주식형 적립식펀드 수익률은 은행 적금이나 채권투자 수익률 보다 평균 2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기간은 2년 이내의 단기에 그치고 있다. 꾸준히 넣기보다 주가 흐름을 잘 맞혀 대박을 터뜨리려는 욕심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소액으로 장기 투자하는 것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적립식 수익률 적금의 2배

8일 미래에셋투자연구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 2001년 1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매월 납입했을 경우 수익률은 72.30%에 달했다. 한국은행 고시 기준 정기적금에 매월 돈을 넣었을 때 수익률(복리기준)인 30.51%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채권(KIS종합지수기준)에 매월 꼬박꼬박 투자했을 경우도 34.20%에 불과하다. 2002년 카드채 사태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올해 유럽 재정 불안으로 국내 증시가 크게 출렁이는 가운데서도 적립식펀드는 짭짤한 수익을 안겨준 셈이다.

2001년에 만들어져 지난 4월 국내 펀드 최초로 누적수익률 1000%를 돌파한 적이 있는 '미래에셋디스커버리1호'에 적립식으로 넣었다면 수익률은 145.43%로 정기적금의 5배 가까이 된다.

목돈을 한꺼번에 넣는 거치식도 다른 자산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인덱스펀드의 거치식 수익률은 250.87%,'미래에셋디스커버리1호'는 723.99%였다. 은행 정기예금 수익률(58.11%)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강남 부동산 불패의 상징이었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101㎡)의 수익률(210.92%)도 거뜬히 앞선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시중금리가 물가인상률보다 낮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주식형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저평가된 자산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장기투자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기도 이겨낸 장기 적립식투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투자자들은 적립식 투자의 소중한 교훈을 피부로 느꼈다. 적립식펀드는 매월 일정 금액을 넣어 투자 시기를 분산한다. 주가가 내려가면 더 많은 주식을 사모아 평균매수단가를 낮추는 효과(코스트애버리징)를 기대할 수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평균 매입단가 이상으로만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낼 수 있다.

2007년 코스피지수 고점인 10월 말에 '미래에셋디스커버리1호'에 적립식으로 가입해 리먼브러더스사태 이후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2008년 10월에 납입을 중단한 투자자는 30.05%의 손실을 입었다. "펀드의 '펀'자도 싫다"며 증시를 떠났다면 연 4% 안팎의 이자율에서 원금회복은 요원한 실정이다. 반면 꾸준히 지난 10월까지 넣어온 투자자는 9.17%의 수익을 챙겼다. 2008년 10월부터 1년 정도 납입을 멈췄다 장이 반등하는 걸 보고 뒤늦게 납입을 재개한 투자자의 수익률은 -0.81%에 그쳤다. 보험사 직원인 이성욱 차장(41세)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일시적으로 불입을 중단했다가 시장이 급반등하면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며 "이번 유럽 재정 위기 때는 오히려 불입금을 늘렸다"고 말했다.

◆왜 장기 적립식 투자인가

시장 등락 시점을 맞힐 수만 있다면 바닥에 사서 천장에 팔고 나오는 게 최고다.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추세에서는 목돈을 한꺼번에 넣는 것이 적립식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강창희 미래에셋투자연구소장은 "증시 바닥이나 흐름을 정확히 맞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시기를 분산해 시장 전망이 틀렸을때의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는 4~5년에 한 번씩 큰 변동성을 보여 2년 이내의 투자 기간으로는 실패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특히 적립식은 주가가 빠져도 코스트애버리징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불안해 하지 않고 장기간 투자할 수 있다.

국내 증시의 높은 변동성을 고려해도 장기 적립식 투자는 필수다. 미래에셋투자연구소에 따르면 2002년 1월부터 6년간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평가액은 3600만원이 되지만 주가가 많이 오른 단 30일만 놓쳐도 900만원으로 원금까지 까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정작 돈을 벌어주는 시간은 투자 기간 중 일부에 불과해 시장에 머물러 있어야 수익을 얻는다"며 "운용철학이 분명한 펀드를 장기로 투자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