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사실상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선언했다. ISD 대상도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여야 간 최대 정치 쟁점인 ISD 조항을 빌미로 공개적으로 반(反)FTA 입장을 표명,파란이 일 전망이다.

류경기 서울시 대변인은 박원순 시장의 ISD 재검토 등 한 · 미 FTA 관련 의견을 담은 '한 · 미 FTA 서울시 의견서'를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고 7일 발표했다.

박 시장은 의견서를 통해 "FTA 발효 후에 미국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출해 손해를 볼 경우 중앙 · 지방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고,이에 따라 시와 시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ISD 조항 재검토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희택 서울대 교수(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 ICSID 중재인)는 "서울시 같은 지방정부는 ISD 대상이 아니다"며 "ISD가 무서워 한 · 미 FTA를 하지 말자는 것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또 "자동차세 세율 구간 축소와 세율 인하로 예상되는 약 260억원의 세수 감소에 대한 중앙정부의 세수 보전 대책이 시급하다"며 "세수 감소는 서울시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 질 저하로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FTA가 발효되면 미국계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무차별 진입이 가능하고 분쟁 발생시 서울시 SSM 조례 및 상생법 등의 무효화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이 자동차 세수 감소분에 대한 중앙정부의 보전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앞서 국세로 전액 보전을 약속한 터여서 근거없는 '정치 공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SSM 문제도 이 조례에 대한 다국적 유통업체들의 구체적인 이의 제기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FTA 반대 논리도 삼는 것은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진 전주대 금융보험부동산학부 교수는 "야당이 한 · 유럽연합(EU) FTA는 순수하게 통상문제로 접근했는데 한 · 미 FTA는 유독 반미 정서로 몰고 있다"며 "서울시장이 정부가 이미 차익 보전을 약속한 자동차세 문제를 뜬금없이 들고 나오는 등 시민단체처럼 행동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ISD에 대한 박 시장의 입장 발표는 여야 간 최대 정치 쟁점 사안을 지자체가 여과없이 야당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또 일부 인터넷과 거리세력의 '괴담'을 사실상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