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선율] 저녁노을 머금은 콜로세움, 로마인들로 북적이는 거리, 나도 저 길을 걸었으면…
[그림 속의 선율] 저녁노을 머금은 콜로세움, 로마인들로 북적이는 거리, 나도 저 길을 걸었으면…
'풍경화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얻은 형제가 있었다. 19세기 중반 독일 화단에서 풍경화의 최고수로 꼽힌 아셴바흐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알파는 형인 안드레아스(1815~1910)의 이니셜,오메가는 동생인 오스발트(1827~1905)의 이니셜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알파는 그리스 자모의 첫째 글자로 영어의 'a'에 해당하고,오메가는 마지막 글자로 영어의 'z'에 해당한다. 따라서 '풍경화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곧 '풍경화의 처음과 끝'이라는 뜻.두 형제의 작품 속에 풍경화의 모든 것이 구사돼 있다는 최상의 찬사인 셈이다.

사실적 묘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형은 19세기 '독일 풍경화의 아버지'로 지칭되며 많은 후배 화가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정작 대중의 인기를 모은 것은 개성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동생 오스발트였다. 독일의 주요 미술관치고 그의 작품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든 것만 봐도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스발트가 당대 독일 화가들의 우상인 형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멘토가 다름 아닌 형이었다는 데 있었다. 오스발트는 학교가 아닌 형에게 그림의 알파와 오메가를 전수받았는데 그런 만큼 누구보다도 형의 장단점을 꿰뚫을 수 있었다. 학습과정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그릴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점을 그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당대 독일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이 로마제국의 옛터인 이탈리아라는 점에 착안했다. 대중이 그곳의 명소를 그린 풍경화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탈리아에 열광하기는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틈만 나면 뻔질나게 이탈리아를 드나들었다. 그가 자주 들른 곳은 로마와 나폴리,피렌체였다. 그러다 보니 화폭을 장식한 풍경도 자신의 고향인 뒤셀도르프가 아니라 로마와 나폴리의 로맨틱한 풍경이었다. 특히 그는 고색창연한 로마제국의 기념비적 유적지들을 감성적으로 화폭에 옮겨 독일인들의 이탈리아 여행 욕구를 자극했다. 오죽하면 당대의 미술사학자인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1850~1938)가 "그는 (이탈리아의) 관광업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탈리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 같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1875년에 그린 '라테라노 지구의 산 조반니 거리'를 보면 구를리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로마교황이 주재하는 성전인 라테라노 대성당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이곳은 로마제국의 공회당인 포럼과 원형극장인 콜로세움이 자리한 오래된 지역으로 지금도 관광객이 쇄도하는 명소다. 화폭에 담긴 산 조반니 거리는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연결되는 주요 거리 중 하나였다.

로마를 방문한 관광객이 눈에 담고 싶어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옛 제국의 문화적 기념물과 그곳의 세련된 사람들,거리의 이국적인 풍물이었다. 이 그림은 이방인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림의 상단에는 로마시대의 대표적 문화 유산인 콜로세움이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곳에서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통하는 거리의 좌우에는 저녁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세련된 옷차림의 로마시민들로 북적댄다. 보도의 가장자리에 늘어선 노점상들은 이들을 상대로 호객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침 거리 왼편엔 두건 달린 카푸친 복을 걸친 수도사들이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데 그들을 향해 개가 짖어대고 있어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림 한 점 속에 없는 게 없이 다 들어간 풍경 종합선물세트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갖춰졌다고 해서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는 여느 거리의 화가들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대가의 '포스'가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도 오스발트의 색채 감각은 독보적이다.

그의 색채는 결코 과장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로맨틱한 감정의 포로가 되기 쉬운 여행자의 감수성을 자연스레 건드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로마 풍경은 우리의 감성에 저항할 수 없는 불을 지핀다.

그의 그림을 한번 본 사람은 결코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19세기 독일 풍경화의 기초를 닦은 안드레아스를 알파로,여기에 온갖 매력 포인트를 더해 풍경화의 완결판을 만든 오스발트를 오메가로 규정한 당대 독일인들의 평가는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

[그림 속의 선율] 저녁노을 머금은 콜로세움, 로마인들로 북적이는 거리, 나도 저 길을 걸었으면…
러시아 특유의 우울과 비장감이 넘치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1840~1893).그의 음악이라고 밝은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향시 '이탈리아 기상곡'은 교향곡 제6번 '비창'을 듣고 의기소침해진 우리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주는 청량제 같은 곡이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37세 되던 해 부인 안토니나 밀리우코바와 파혼 후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동생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탄생했다.

그는 여행 중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매혹됐는데 남구 특유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로마에서 마주친 거리의 풍물과 카니발 행렬은 그로 하여금 글링카의 '스페인 서곡' 같은 명곡을 남기고픈 욕망을 자극했고 그것은 1810년 이탈리아 민요와 무곡을 토대로 작곡한 '이탈리아 기상곡'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기발한 착상의 소품'을 뜻하는 기상곡(카프리초ㆍcapriccio)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작품은 자유로운 형식과 다양한 음색으로 감상자에게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도입부의 나팔 소리는 차이코프스키가 로마에 체류할 때 호텔 부근에서 아침마다 들려온 기병대의 나팔 소리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그는 이 곡이 널리 주목을 받으리라고 예감했던 듯하다. 이 점은 자신의 재정적 후원자인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감을 피력한 데서 잘 드러난다.

상쾌한 주말 이탈리아 기상곡의 선율이 흐르는 산 조반니 거리를 마음속으로 산책해보자.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