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소모전…예산안 심의에 '불똥'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가 장기 표류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남은 국회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일정에 불똥이 튈 전망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한 · 미 FTA 비준안 처리가 불발된 3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일정뿐 아니라 예산안 심의도 부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국회는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다. 지난 6월 황우여 한나라당 ·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예산안 법정 의결 기한인 12월2일로부터 48시간 전까지 예산안 심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본회의로 자동 회부되는 '예산안 자동상정제'를 도입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헌법 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날짜로 따지면 12월2일이다. 하지만 1990년 이후 국회가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불과 5차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좋았다. 지난 8월27일 2003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 처리 시한에 맞춰 작년 예산의 결산을 마친 데 이어 황우여 · 김진표 여야 원내대표들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2012년 예산안을 법정기일인 12월2일까지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달 2일 열린 예산안 등에 대한 공청회는 작년보다 2주나 앞당겨 열렸다.

하지만 한 · 미 FTA 비준안 처리에 여야가 격하게 대립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예결위 소속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민주당이 한 · 미 FTA에 관한 여야 합의사항을 반나절 만에 뒤집었는데 어떻게 신뢰가 생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야당 의원들도 한 · 미 FTA 비준안을 19대 총선 이후로 넘기겠다는 약속이 없으면 다른 일정도 협조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날 예정된 본회의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오는 7~9일 예정된 예산안 등에 대한 종합정책질의 때 여야가 부딪칠 수 있다. 10일 본회의는 한 · 미 FTA 비준안 직권 상정의 우려로 재차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 미 FTA 비준안은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돼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 가능성은 열려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특히 내년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여야 간 예산 책정을 놓고 격한 대립이 예상된다. 대학등록금과 보육비 등 복지 예산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지역구(경북 포항)의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얘기가 야당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