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입양' 감시 사각지대
왜 늘어나나
합법 입양 기준 까다로워…양부모 신분 노출 안돼
브로커까지 등장
미혼모에 계획적 접근…아이 넘기고 수수료 챙겨
단속 기준이 없다
'매매' 여부 가려내기 힘들어…적발해도 처벌 쉽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해 입양하는 거라 저희는 비밀입양을 원합니다. 현재 임신한 것처럼 행동한 지도 20주 정도입니다. 임신한 것처럼 보이려고 모형배를 특수제작해서 다음주부터 차고 다닐 예정입니다. 약간의 생활비도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
갓 태어난 신생아들이 인터넷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까다로운 정식 입양절차와 부정적인 사회인식,출산 사실을 숨겨야하는 미혼모와 입양아의 장래를 걱정해야 하는 양부모의 입장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인터넷 입양이 늘고 있다.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미혼모와 불임부부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사례금''경제적 보상 가능' 등 입양을 위한 다양한 거래조건을 제시한 글들이 넘쳐난다. 불법이지만 이를 단속할 마땅한 근거조차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입양이 성사되고 있지만 정작 경찰과 해당 부서인 보건복지부가 선뜻 나설 수 없는 이유다. 이렇다보니 인터넷으로 입양되는 신생아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인터넷 입양, 왜 늘어나나
우리나라 정서상 불임을 숨기고 입양한 사실을 문서로 남기지 않으려는 양부모들이 많다. 2009년 입양기관을 통한 국내 입양아 1314명 중 90% 이상이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불법이지만 친생자(자신이 낳은 아이)처럼 서류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미혼모나 양부모들은 절차가 까다롭고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공개 입양 대신 인터넷 입양을 별다른 죄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입양을 한 박모씨(29)는 "아이가 입양아라서 결혼 등을 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돼 서류에 남지 않는 인터넷 입양을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까다로운 입양기준 탓에 원치 않는 아기를 낳은 미혼모가 인터넷에서 손쉬운 입양을 찾기도 한다. 한 사회복지기관 관계자는 "미혼모는 가족에 출산 사실 등을 숨긴 채 입양시키려는 경우가 많다"며 "합법적인 입양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동의가 필요없는 인터넷 입양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어렵게 부모의 동의를 얻었더라도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내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의 수보다 아이를 맡기려는 산모의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복지부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의 수를 2011년에 916명으로 제한했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에선 양부모 10명 중 8~9명은 여자 아이를 원한다"며 "남자 아이는 입양기관에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미혼모의 영아 유기 사건의 대부분이 '남성'인 것도 이를 방증한다.
양부모 자격이 엄격해지는 것도 인터넷 입양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 양부모가 아이와 25~60년 이내의 나이차가 있어야 되고 기혼자는 결혼한 지 3년 이상,독신일 경우는 35세 이상에 직업과 추천서가 필요하다.
한연희 한국입양홍보회 회장은 "여러 가지 요인 중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해도 입양할 수 없다"며 "절차도 까다로워 입양을 완료하는 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입양 브로커까지 등장
인터넷 입양 수요가 늘면서 이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들도 생겨나고 있다. 2009년 9월 대구에서 입양 브로커의 중개로 아이가 매매되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사건을 통해 그간 암암리에 진행됐던 신생아 매매가 인터넷을 통해 간단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입양 브로커는 흥신소,조산원,산부인과,입양기관 등을 통하거나 인터넷에서 미혼모들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미혼모의 아이를 양부모에게 넘기고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천차만별이다. 일부 브로커들은 앵벌이 조직 등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입양되는 아이나 입양하는 부모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인터넷 입양은 폭력 · 아동학대를 거쳐 결국 파양(罷養)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입양된 아이가 서커스단이나 '앵벌이 집단'에 팔리거나 장기 적출로 희생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인터넷 입양 처벌기준 없다
인터넷 입양은 적발되더라도 마땅히 처벌할 기준이 없다. 때문에 경찰은 선뜻 단속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관할 부처인 복지부도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을 매매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인터넷 입양을 할 때 병원비 명목으로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매매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게 복지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인터넷 입양이 적발돼도 입양한 아이의 장래를 위해 금전적인 거래가 이뤄진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박은경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 사무관은 "입양 기관들이나 포털에 협조를 요청해서 입양과 관련된 글을 모니터링하고,적법한 입양을 홍보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불법이라고 명시된 규정이 없어 수사에 나서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 일선 검사는 "최근 입양한 아이를 때려 뇌사에 이르게 한 이모씨도 아이를 입양한 것에 대해선 처벌받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처벌을 받은 판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