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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KAIST와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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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
    [취재여록] KAIST와 동물농장
    "호랑이,여우,토끼가 사는데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여우가 호랑이를 쫓아낸다면 토끼는 어떻게 될까?"

    KAIST 재학생이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향후 설치될 대학평의회에서 학생들이 배제되고,일부 교수들이 서남표 총장의 퇴진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상황을 비꼰 것이다.

    1년 내내 지루하게 이어져 온 KAIST 갈등이 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번지고 있다. 종전까지는 서 총장과 교수 · 학생 '연합군' 간 갈등이었다면,이제는 교수와 학생들이 각각 반대편에 서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게다가 노조까지 가세해 "교수협의회가 제자들의 죽음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KAIST 이사들은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끝이 안 보이는 갈등을 의식한 듯 "(서 총장의) 개혁이 중단돼서는 안 되며,흔들림 없이 학교 운영에 힘써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사회 결정에 대해 학교 측은 "KAIST의 영속적 발전 및 지속적인 개혁 추진이라는 대의와 조속한 학교 안정이라는 명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신중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당초 KAIST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연쇄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서 총장의 학교 운영이 '독선적'이라고 비판하면서,잘못된 대목을 바로잡자는 취지였다. 혁신위는 대학평의회 구성 등 26개 결의안을 서 총장에게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쟁점 사항의 이행 여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총장 · 학교 측과 교수협 측은 서로 학내외 비방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서 총장이 전격적으로 대학평의회 구성을 약속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결국 빙빙 돌아서 제자리다.

    비상혁신위 활동의 목적이 대부분 달성됐음에도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일부 교수의 주장은 명분을 찾기 힘들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을 벗어난 지금은 연구와 강의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순리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회라는 대의기구가 있음에도 대학평의회 참가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학업보다는 '학내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로 비쳐질 수 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과 각계의 정성스런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두뇌집단' KAIST의 구성원 모두가 본분을 돌이켜 볼 때다.

    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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