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지금 나의 책상 위엔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란 책이 놓여 있다. 그가 썼던 여러 에세이를 엮은 에세이집이다. 한 가지 주제 하에 쭉 써나간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주제에 관해 쓴 짧은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 가는 제목별로 페이지를 앞으로,뒤로 넘겨가며 읽고 있다.

작가란 직업은 세상의 다른 직업과 달리 훨씬 더 재능이 필요할 것 같고 그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도 일반 회사원들과는 매우 다르고 뚜렷할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처럼 작가가 되어 버리는 수도 있겠고 혹은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해 오웰의 책을 집어 들었고 그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게로 흘렀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잠시 다른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일을 잘 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잘 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할까.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으라고.그것이 성취의 첫걸음이라고.

자신의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하는 것과 일을 잘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있다. 그것도 크게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몇 번씩 슬럼프가 오게 마련이다. 회의도 찾아 오고 좌절도 겪으며 방황도 하게 된다. 이럴 때 방황에 송두리째 자신을 내주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가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명확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며 이곳에 있는지,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개인의 비전 찾기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비전은 기업이 제시해야 하고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기업의 사원으로 입사한다. 하지만 비전을 꼭 회사가 제시하고 개인은 팔로어가 돼야 할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비전을 볼 수 있고 품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각자의 방식이 생기는 것이며 그것이 그 사람을 타자와 구분해 준다. 그 사람만의 세계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선택한 길을 오래도록 단단하게 잘 갈 수 있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누구 눈에나 똑같이 보인다. 그러나 표면을 지나 안쪽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거기엔 겉만 볼 때는 채 드러나지 않는 다른 의미들이 들어 있고,더구나 그것들이 핵심이고 본질일 때가 많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일을 오래도록 잘 하고 싶다면,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묻고 답을 찾으라고.

우주에 흔적을 남겨라,세상을 바꾸자 등 이런 것만이 비전이 아니다. 내가 나의 일을 대하는 자세와 생각,그것이 곧 개인의 비전이며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오래도록 잘 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건투를 빈다!

최인아 < 제일기획 부사장 namoo.choi@sams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