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마군단' 이끌 리더십 절실하다
페르시아 정복에 나선 알렉산더는 항상 최선봉에서 질풍노도와 같이 달렸다. 하지만 부하들이 혼자 너무 빨리 나가는 그와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결국 그가 사라진 후 제국은 네 개로 쪼개져 부하장군들의 손에 들어갔다.

엄청난 야행성인 나폴레옹은 아예 집무실 바닥에 깐 지도 위에서 잠을 자며 끊임없이 전쟁의 큰 흐름을 미리 꿰뚫어 필요한 장소에 적절한 병력을 배치하는 놀라운 혜안을 가졌다. 우수한 인재확보에도 각별한 애착을 가져 오늘날의 세계적 명문 '에콜 폴리테크닉' 같은 그랑제콜을 만들었다.

칭기즈칸과 맞선 적들이 가장 당황한 것은 어디서 나타나 어떻게 공격할지 예측할 수 없는 몽골군단의 신출귀몰함이다. 그는 상황에 따라 어느 부하 장수에게 힘을 실어줄지를 정확히 알고 상황파악과 의사결정이 아주 빨랐다.

해외영토를 점령해 대제국을 건설한 역사 속의 세 인물과 '경제영토'인 해외시장을 점령하기 위한 경제전쟁의 선두에 선 우리 기업 리더들 사이에 몇 가지 재미있는 닮은 꼴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오너가 가장 열심히 선두에서 뛰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은 조직과 자금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깝게도 공중분해돼 몇몇 기업만이 잔재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선봉으로 그룹이 한참 잘나갈 때 "마누라 빼곤 다 바꾸라"고 위기 상황을 끊임없이 경고한 이건희 회장의 혜안은 정확히 맞아 '애플 쇼크'가 세계를 덮쳤다. 이 강타에 내로라 하던 세계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초토화되고 있을 때 그나마 아이폰을 따라 잡은 건 항상 위기의식을 가지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가며 변화에 대비한 삼성의 갤럭시뿐이다.

한때 세계시장의 40%를 거머쥐던 노키아의 점유율은 15%대로 추락해 졸지에 싸구려 '아프리카 폰'으로 전락했다. 물론 노키아도 2007년 아이폰이 나왔을 때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이폰은 통화 품질이 형편없다" "반짝 하다 금방 사라질 것이다"는 등 참으로 한심했다. 최고경영자(CEO) 칼라스뷰오가 자만하며 아이폰을 과소 평가하는 부하들의 단견에 말려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지평을 볼 줄 모르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다.

"10만㎞ 무상보증,직장을 잃으면 판 차를 되돌려 받겠다. " 미국식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엄청난 리스크 때문에 상상도 못하던 신출귀몰한 마케팅전략이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체에서는 품질부서가 힘겨루기에서 항상 생산과 판매 부서에 밀려왔다. 그런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품질담당 임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품질 OK'가 없으면 신차 출시까지도 미뤘다.

우리의 대표기업 군단(軍團)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세계 최강의 애플,도요타 군단들과 겨루며 결코 밀리지 않는 데는 우수한 근로자와 임직원,그리고 연구인력의 힘도 크지만 이에 못지않은 것은 총사령탑의 '리더십'이다.

한때 전자산업의 황제로 군림하던 소니도 리더가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잘 읽지 못해 그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주었다. 눈앞의 영업실적 확대에만 급급하던 도요타도 불량부품 파동으로 망신을 당하고 1등의 자리에서 내려섰다.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공성(攻城)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 더욱이 산업화시대의 경제전쟁이 눈에 보이는 적하고만 잘 싸우면 되는 보병전이었다면,산업 간의 벽이 무너지고 기술의 발전속도가 워낙 빠른 요즘은 적이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넓은 대초원에서 펼쳐지는 기마전이다.

이럴 때일수록 너무 전문경영인 체제냐 오너 체제냐라는 이분법에 얽매임 없이 기업리더가 혜안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기마(騎馬)군단과 같은 기업 무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안세영 < 서강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