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연금보다는 일시금으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2009년 1월 초부터 올해 8월 말까지 퇴직연금에서 퇴직급여를 받아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금으로 받아갈 수 있는 요건을 갖춘 1575명 중 불과 3명만 연금을 선택했다.

이런 근로자의 선택은 근본적으로 미래의 현금보다는 현재의 현금을 더 선호하는 인간의 성향과 관계가 깊다. 행동재무학자들 역시 사람들이 시점에 따라 다 른 종류의 할인율을 가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당장의 100만원이 주는 효용과 1년 후 100만원이 주는 효용이 다른데 그러한 효용은 비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먼 훗날의 효용은 당장의 효용과 비교할 때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간의 본능 때문에 미래에 나눠서 받는 연금보다는 당장의 일시금을 선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보면 일시에 받는 목돈은 여러 가지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우선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목돈을 굴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은행의 예금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인 데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주식시장 역시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자산을 굴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 밖에도 무모한 창업으로 어렵게 모은 퇴직금을 한꺼번에 날릴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은퇴 이후에는 일시금이 아닌 연금이 더 유용하다.

[우재룡의 준비된 은퇴] 일시금 아닌 연금선택 위한 '넛지'가 필요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근로자들이 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연금을 선택할 만한 유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세금제도에서는 퇴직금을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받아갈 만한 혜택이 부족하다. 퇴직 일시금은 분류과세로 공제혜택이 많아 퇴직소득세를 계산할 때 일단 40%를 정률 공제한 후 근속 연수에 따라 한 번 더 공제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최저 소득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으면 연금소득이 늘어날수록 공제율이 작아지고 다른 연금소득과 합산과세된다. 또 연간 총 연금소득이 6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가 적용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금보다 일시금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퇴직연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연금소득에 대한 공제 한도를 현재 9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확대하고 연금소득세 산출 때도 퇴직소득세와 같이 정률공제를 신설하는 등의 세제혜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시카고대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와 리처드 탈러 교수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훼손하지 않고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넛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란 뜻으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함)’라고 정의했다. 근로자들이 자연스럽게 일시금이 아닌 연금을 선택해 편안한 은퇴를 준비하도록 만드는 ‘넛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