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은 숙소서 허니문 망친 샤프…"고객 100% 만족할 호텔 만들자"
“이 정도라면 내가 호텔을 만들어도 되겠어.”

신혼 첫날 밤을 보내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의 한 호텔을 찾은 건설업체 부사장 이사도어 샤프는 투덜거렸다. 토론토에서 유명하다는 호텔을 어렵게 예약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은 옆방 사람들과 함께 쓰게 돼 있었다. 방음장치도 안돼 있어 옆방의 각종 소음이 고스란히 벽을 타고 들어왔다. 화를 꾹 참고 샤워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샤프의 부인은 고함을 질렀다. “비누와 욕실수건을 쓰는데 왜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거지? 물도 나오지 않아.”

이렇게 첫날 밤을 완전히 망쳐버린 샤프는 멍하게 천장만 바라봤다. 잠시 뒤 그는 벌떡 일어서며 “그래! 제대로된 호텔을 만들어보자”고 외쳤다. 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샤프를 바라봤다. 대학에서 건축을 배우고, 집만 지어온 샤프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호텔업에 뛰어들 결심을 한다. 생활에서 느낀 불만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년 뒤 그는 31개국에서 6성급 호텔 82개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가 됐다. 회사 이름은 포시즌스호텔. 샤프는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토론토 외곽 모텔 사장이 세계 최대 호텔 거물로

샤프가 호텔업의 꿈을 갖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6년이 흘렀다.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모텔부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1961년 토론토 외곽 후미진 지역에 포시즌스 모터 호텔을 열었다. 객실은 125개 정도였다. 처음에는 가격을 낮추고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했다. 로비에는 식당과 술집을 운영했다. 그러저럭 호텔은 잘됐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묵고 싶은 호텔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당시 호텔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은 두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대도시 컨벤션센터급 호텔이고, 다른 하나는 포시즌스 모텔처럼 간소한 서비스와 친밀감이 있는 모델이었다. 샤프는 이 둘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편안함과 친밀감을 주는 소규모 호텔의 매력에 각종 회의시설 및 통신시설 등을 갖춘 대형 호텔의 장점을 결합한 것.

더 높은 객실요금을 받기 위해 보다 질높은 서비스도 고안해 냈다. 호텔업계에서 처음으로 24시간 룸 서비스,목욕가운 무료 제공,화장 거울,드라이어,드라이클리닝,다림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 호텔 내 피트니스센터를 처음 설치한 것도 샤프의 아이디어였다. 이런 그의 철학은 ‘남들에게 대접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춰라’는 문구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포시즌스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샤프는 이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포시즌스의 숙박객은 갈수록 늘었다. 이를 기반으로 런던의 유명한 조지상크 호텔을 비롯해 미국 워싱턴 호텔·뉴욕 피에르 호텔 등을 잇따라 사들이면서 세계 최대 호텔체인으로 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 “포시즌스의 파격적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 호텔 앞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가득찼다”며 “다른 호텔들은 심한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최근 포시즌스 베벌리힐스는 285개 전 객실에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비치했다. 또 객실의 모든 침대와 베개를 최고급 천연라텍스와 거위털로 만들었다. 할리우드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한 토크쇼에 출연해 “포시즌스의 침대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밝힐 정도로 철저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샤프의 성공에 대해 “통합의 사고력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아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중소규모의 호텔과 최고급 호텔 서비스의 결합을 이뤄냈다는 의미다.

◆사소함이 거인을 만들다

샤프는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자란 토론토 워드지역은 당시 최대의 유대인 빈민가였다. 좁은 도로들 사이로 빼곡히 들어선 집들의 보일러에선 석탄재가 연신 뿜어져나왔고, 오물은 제때 처리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했고 어머니는 잡일을 하며 하루하루 가정을 꾸려나갔다. 어린 시절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샤프는 집짓는 일을 배웠다. 건설현장에서 그는 포기를 모르는 근성을 배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어려운 형편에도 라이어슨대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아버지와 함께 한푼한푼 모은 돈으로 ‘맥스샤프앤선’이라는 소형 건축회사를 세웠다. 은행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해 회사가 수차례 부도 위기를 겪는 어려움을 견뎌내고 중견 건설업체로 발돋움했다. 이를 기반으로 호텔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샤프는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주변의 아주 사소한 동기가 나를 거인으로 만들었다”고 답했다. 신혼여행 때 느낀 불만을 사업을 통해 해결한 게 단적인 예다. 샤프는 이 원칙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했고, 1960년 토론토의 작은 모텔을 세계 최대 럭셔리 호텔 체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샤프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1980년대에 불어닥친 세계 경기 불황으로 많은 호텔업체들은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나 많은 성공한 경영자들처럼 샤프는 역발상의 전략을 펼쳤다. 5성급 이상의 호텔만을 계속 짓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자랑하는 기업 간부들이 우리의 주요 고객”이라며 “그들은 시차와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회사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최고급 호텔로 불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얘기였다. 이 전략도 성공을 거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영국의 호텔들이 포시즌스를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모든 고객을 100% 만족시킨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미국의 고급 여행잡지인 ‘트래블 앤드 레저’는 지난해 세계 최고 호텔 100곳을 발표했다. 톱 10위엔 포시즌스 이스탄불(4위)과 하와이(6위) 두 곳이 올랐다.

◆빌 게이츠와 공동경영

2000년대 들어 세계 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호텔업계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포시즌스도 충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루 평균 숙박료가 전년에 비해 20% 이상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9·11 테러’ 발생 후 여행객이 줄어 충격이 배가됐다. 2002년에는 그동안 포시즌스에 큰 수익을 안겨줬던 뉴욕호텔마저 적자를 내기도 했다. 호텔업 불황은 몇 년간 이어졌다. 샤프는 뭔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난국을 헤쳐갈 방법을 고민하던 2006년 어느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중동 최고갑부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 왕자로부터 제안이 왔다. 포시즌스를 인수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들이 제시한 인수 가격은 주식 대금 33억7000만달러에 부채를 합쳐 총 38억달러. 샤프를 포함해 3명이 공동 CEO를 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잠시 고민에 빠진 샤프는 포시즌스의 미래를 위해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사회를 열었다. 그는 “우리의 객실점유율을 단지 1~2%만 향상시킬 수 있어도 회사의 순익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포시즌스의 장기 전략과 비전, 핵심 가치를 보전하고 확장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고 내가 믿어온 방안을 이사회가 지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샤프는 현재 포시즌스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 창업자이자 CEO다. 샤프는 “고객을 기쁘게 하는 일을 매일 생각한다”며 “포시즌스를 찾는 고객이 있는 한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