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은행 배당 줄이고 충당금 쌓아라"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에 배당을 줄이고 내부 유보를 더 쌓으라고 지시했다. 수년 뒤를 내다보고 이익이 날 때 건전성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하게 적립하라는 것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사진)은 지난 10일 오후 여의도 금감원 건물에서 6개 주요 은행의 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기업의 어려움도 가중되고,그 과정에서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2~3년을 내다보고 그나마 상황이 좋을 때 충분한 충당금을 쌓아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민병덕 국민은행장,이순우 우리은행장,서진원 신한은행장,김정태 하나은행장,조준희 기업은행장,김태영 농협 신용대표가 참석했다.

◆"하반기 충당금 더 쌓아라"

권 원장은 행장들에게 "지난해 상반기 은행들이 약 8조원을 충당금으로 쌓은 데 반해 올 상반기엔 약 4조원 정도를 쌓아 작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며 "하반기엔 충당금을 더 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은행권의 하반기 순이익이 7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반기 순이익 약 10조원에는 현대건설 매각에 따른 특별이익(3조2000억원)이 포함돼 있는 만큼 영업을 통한 하반기 이익 규모는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란 전망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행장들은 권 원장의 내부 유보 확충 요구에 상당히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하반기 은행권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5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저신용자 대출 보겠다"

권 원장은 은행 고객인 중소기업과 개인들이 더욱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줄 것도 행장들에게 요청했다. 특히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그동안 꺼려왔던 저신용자 대출에도 나서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여간 은행들은 중소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거뒀다"며 "이익의 원천인 중소기업과 가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익의 일부를 돌려준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특히 "은행들이 지난 몇 년간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여 그 부담이 2금융권에 너무 가중된 측면이 있다"며 "금감원은 은행들의 저신용자 대출 실적을 경영실적평가에 반영하고 철저하게 점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반 월가 시위 "남의 일 아닐 수도"

이날 간담회에서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 월가 시위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권 원장과 행장들은 미국의 시위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금융회사들이 다시 배당을 늘리고,상여금을 올리는 등 '파티'를 벌이다 비난을 자초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 원장은 "우리 금융회사들은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지만,미래를 위한 대비에 소홀하거나 이익을 고객에게 환원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비슷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정보기술(IT) 보안 사고와 관련,행장들은 전문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회사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고객정보가 100만건 이상인 경우 최고경영자(CEO) 및 담당 임직원에게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