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현대ㆍ기아차 vs 폭스바겐… "상대를 넘어라" 운명의 대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산업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불러온 트리거(trigger · 방아쇠)였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처럼,쓰나미같이 밀려든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거대 기업은 한 순간에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신흥강자들은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노키아의 몰락과 애플의 비상도 이 무렵 시작됐다.

자동차 산업도 이 같은 지각변동을 피할 수 없었다. 절대 강자로 통했던 미 GM과 일 도요타가 비틀거리는 틈새를 비집고 폭스바겐과 현대 · 기아자동차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양사 모두 위기 때 오히려 공격경영을 펼쳐 2010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지금 추세라면 현대 · 기아차와 폭스바겐이 머지않은 미래에 글로벌 1위 메이커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일전이 불가피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비즈니스 모델이 닮았다. 양사 모두 중소형 · 고연비 차량에 강하다. 둘째는 미국 유럽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이머징 마켓에서 최대 라이벌이다. 양사 최고경영자(CEO)가 승부사 DNA를 갖고 있는 점도 정면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불 뿜는 연비 좋은 중소형차 경쟁

[CEO & 매니지먼트] 현대ㆍ기아차 vs 폭스바겐… "상대를 넘어라" 운명의 대결
2008년 이후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다운사이징'이다. 고유가 · 친환경 시대를 맞아 배기량을 낮추고 연비를 높이는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폭스바겐은 유럽에서,현대 · 기아차는 미국에서 연비가 뛰어난 중소형차의 강자로 올라섰다.

현대차가 조만간 출시할 신형 'i30'의 1.6디젤 모델은 연비와 출력이 각각 20㎞/ℓ(자동기준),128마력 수준이다. 동급 골프 1.6 TDI의 105마력보다 앞서고 연비도 골프(21.9㎞/ℓ)에 필적한다.

현대차 'i40'는 동급인 폭스바겐 파사트 2.0 TDI를 앞선다. i40의 연비는 18㎞/ℓ,파사트는 15.1㎞/ℓ다. 출력은 140마력으로 비슷하다. i40가 파사트보다 작은 엔진(1700cc)를 탑재했음에도 비슷한 출력을 내면서 연비는 오히려 앞서고 있다. 폭스바겐이 현대차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기아차의 신형 프라이드 5도어(1.4디젤)는 ℓ당 30㎞ 이상의 연비를 보여 유럽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머징 마켓의 최대 라이벌

두 회사는 이머징마켓에서도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중국에선 폭스바겐이 앞선다. 올 들어 1~8월까지 폭스바겐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18.6%다. 1980년대 중반에 진출해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폭스바겐의 판매량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현대 · 기아차 시장점유율은 폭스바겐의 절반 수준인 9.7%다. 하지만 중국 진출 역사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인도에선 현대차가 18.2%의 시장점유율로 폭스바겐(5.4%)을 압도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브라질 공장을 착공했다. 떠오르는 남미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주립은행(NordLB)의 프랭크 슈우페 자동차애널리스트는 "머지않아 현대 · 기아차와 폭스바겐이 글로벌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진시장에서 양사의 성적이 엇갈린다. 폭스바겐은 '안방' 유럽시장에서 12.3%의 시장점유율로 현대 · 기아차(4.8%)를 누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선 점유율이 3.4%에 그쳐 현대 · 기아차(9.1%)에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규모는 GM 464만대,폭스바겐 409만대,도요타 371만대,르노-닛산그룹 343만대,현대 · 기아차 319만대 순이었다.

◆승부사 DNA의 불꽃대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 최장수 CEO이면서 최고전문가로 통한다. 위기 때마다 특유의 뚝심과 공격 경영으로 전세를 뒤집는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왔다.

2009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자 정 회장은 신차 구매자가 일정기간 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도입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함께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그는 지난달 유럽 현지법인을 방문해 "유럽 위기는 우리에게 기회"라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당부했다.

부품 자재과장으로 출발해 40여년간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정 회장은 '품질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신차 출시는 정 회장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은 아우디 CEO를 거쳐 2007년 폭스바겐 CEO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직후 신모델 개발과 중국 · 미국 공장 증설 등 공격경영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사회로부터 올해 초 임기를 5년 연장 받은 그는 "2018년 세계 1위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제시했다.

빈터콘 회장은 작년 7월 독일 뉴스매거진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를 존경하며 항상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2개월이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현대차 부스를 찾은 그가 골프의 경쟁차종인 신형 i30의 이곳저곳을 자로 재보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를 본 현대차 관계자들은 "정 회장을 많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