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67) 박사가 11일 대구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강 박사는 이날 오전 대구동신교에서 열린 '인물은 길러지고 명문가는 만들어진다' 특강에서 "인생을 살다보면 좌절을 겪을 때가 있으나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학생 때 실명하고 부모와 누나를 잇따라 여의면서 '왜 이런 재앙이 닥치나'하는 좌절감에 빠졌다" 면서 "하지만 내게 남은 능력을 최대한 계발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맹인학교를 거쳐 연세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털어놨다.

강 박사는 "이 모든 것은 18살 맹인학교에 입학할 때 앞으로 30년 동안의 인생 비전과 목표를 정해 스스로를 채찍질했기 때문" 이라며 "장남과 차남에게도 동기 부여 필요성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큰 아들이 안과의사가 된 사연도 소개했다.

그는 "큰 아들이 4살 때 '눈이 안보여 운전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는 아빠 대신 눈 뜬 아빠를 달라'는 기도를 했다" 면서 "'네가 의사가 돼 아빠 눈을 고쳐주는 게 어떠냐'고 말했고 이후 아들이 의사의 꿈을 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돌이켜보면 장애인이 된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고 미국 대통령 4명을 포함해 각국 정상 22명을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중학생 시절 축구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19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76년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피츠버그대학교 교육철학박사)가 됐다.

1992년에는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해 회장직을 맡고 루스벨트재단 고문 등을 역임했다. 유엔 장애위원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맡아 미국 내 장애인 인권 분야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 한국인의 명예를 드높인 바 있다.

강 박사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첫째 강진석 씨는 안과의사로, 워싱턴 최고 안과 전문의로 선정되기도 했다. 둘째 강진영 씨는 오바마 대통령 선임 법률고문으로 임명돼 2대에 걸친 한인 부자가 백악관 고위직에 오르는 기록을 만들었다.

한경닷컴 부수정 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