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대응에 무게 둘 듯…내달 금리 인하 전망

유럽중앙은행(ECB)이 6일 열린 금융통화정책 회의에서 3개월째 기준금리를 현행 1.50%로 동결했지만, 이미 시장은 다음 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분위기다.

ECB가 이날 회의에서 금리 동결 결정을 하면서 통화 정책 변경을 분명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강력한 하락 위험을 맞고 있다"며 경제 침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피력한 것.

따라서 ECB는 올들어 지난 4월에 이어 7월 각각 금리를 0.25% 올리면서 연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내비쳤으나, 이러한 금리 인상 기조는 6개월 단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ECB의 금융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이미 시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ECB가 지난달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서 물가 상승 억제보다는 경제 침체 우려 쪽에 무게를 뒀으며, 이후 유로존 재정 위기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날 금융통화정책 회의 결과가 임박하면서 유로ㆍ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유럽 주요 증시가 일제히 상승한 것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

ECB의 금리 동결 결정은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지난 8월 2.5%에서 9월에 3.0%로 급등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물가 상승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난방비 등 에너지 비용 상승에 국한됐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물가 상승 요인이 상당히 누그러질 전망이다.

트리셰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집행위원들이 금리 인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이례적으로 내비친 것은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서 여러 각도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ECB는 지난 4월 처음으로 금리를 올리기 전까지 무려 23개월간 금리를 제자리로 묶은 바 있다.

ECB가 금리정책의 큰 방향성을 바꾸기까지는 그만큼 오랜 기간 숙려의 시간을 거친다.

덴마크 노르디아 은행의 수석 외환 전략가인 닐스 크리스텐젠은 블룸버그 통신에 "올해 두 번이나 금리를 올린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아 금리를 다시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지난 7월 금리를 올린 뒤 3개월만에 인하로 기조를 바꾸게 되면, 지난 두 차례의 인하 판단이 틀렸거나, 현재 경제 침체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자인하는 꼴이 된다.

ECB 내부 집행이사들 간에는 이번달 8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는 트리셰 총재가 후임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말고 스스로 총대를 메야 한다는 기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장 전문가는 "후임자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가 다음달 ECB 수장을 맡자마자 금리를 내리게 되면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리셰 총재 입장에서도 이번 금리 동결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다.

그는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국채 매입을 결정을 주도함으로써 ECB내 불화를 자초했다.

차기 ECB 총재로 거론됐던 악셀 베버 독일 중앙은행장과 같은 독일인인 위르겐 슈타르크 집행이사가 이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잇따라 사표를 던졌다.

신임 드라기 ECB 총재는 금리정책에 대한 분명한 노선을 아직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다만 그가 재정 위기 핵심국인 이탈리아인이라는 점과 베버나 슈타르크와 같은 `매파'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ECB의 통화 정책 기조가 인플레이션 억제보다는 침체 방어쪽에 맞춰질 공산이 크다는 쪽에 비중을 두게 하는 요소다.

이날 유럽 주요 증시는 금리 동결 결정으로 수직 낙하하는 듯했지만, 하락폭을 모두 만회하고 강한 상승으로 마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박창욱 특파원 pc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