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13m 버디 퍼트,PGA투어 데뷔 7년 만에 이룬 꿈….210전 211기의 감동 드라마였다.

9세 때 골프채를 잡은 '필드 신동'이었지만 '만년 유망주''느림보 플레이어' 소리를 들어야 했던 재미교포 케빈 나(28 · 한국명 나상욱).그는 3일(한국시간) 미국 PGA투어 가을시리즈 첫 대회인 '저스틴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총상금 440만달러)에서 투어 첫 우승을 확정짓고 속으로 울먹였다.

전날 밤에도 2위에 머무는 악몽을 꿨으니 오죽했을까. 그는 어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우승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동안 PGA투어 우승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늘 멀게만 느껴졌다. 2003년 12월 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210차례 출전,세 번이나 준우승에 오르고 톱10에도 28차례 들었으나 우승에 대한 조바심으로 자신을 옭아매곤 했다. 2006년에는 손가락이 차 문에 끼는 사고를 당해 슬럼프에 빠졌다. 그 바람에 백스윙 톱에 올라갔다가도 다운스윙을 하지 않거나 강하게 휘두르는 버릇이 생겼고 '헛스윙' 논란도 일으켰다.

그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올여름부터 스윙 교정에 들어갔다. 아직도 교정 중이다. 플레이오프대회 때 기대를 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우승 직후 그는 "힘들지 않았던 대회가 없었지만 우승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며 "모든 사람이 우승을 기대했는데 이제야 해냈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은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 나용훈 씨의 병세 호전에 이은 겹경사다. 아버지는 그에게 골프를 가르쳐주었고 캐디를 맡기도 했다. 골프장에 연습하러 가면 벙커에 볼을 쏟아 부어놓고 두 시간 이상 샷 연습을 하도록 '지옥 훈련'을 시킨 아버지 덕분에 그는 "벙커샷이 페어웨이만큼 편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명지초등학교에 다니다 8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다. 9세에 골프채를 잡은 뒤 미국 아마추어 무대에서 최연소 기록을 무더기로 갈아치웠다. 12세 때 US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본선에 진출해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대회 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고,1999년과 2000년에는 로스앤젤레스시티챔피언십을 연달아 제패했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에만 100승 이상을 거뒀다. 2001년부터는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던 부치 하먼에게 스윙지도를 받았다. 최고 선수만 상대하는 하먼이 어린 그의 발전 가능성을 꿰뚫어본 것.2003년 12월 20세(당시 최연소)로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했다. 최경주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PGA투어에 진출한 것이다.

"이번 대회는 집 근처의 익숙한 코스에서 열린 데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돼 있었고 이번에야말로 우승할 때라고 생각했죠.일단 첫 우승을 하면 계속 우승이 굴러들어올 것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다음 우승은 아마도 마스터스대회가 되지 않을까요. "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