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업 승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한국가업승계기업협의회(회장 강상훈) 소속 15개사 대표들과 함께 일본 오사카를 방문,가업 승계 문제로 고민하는 기업인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한 일본 기업인은 "회사를 물려줄 아들이 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거나 후대가 끊겨 가업을 잇지 못하게 돼 지역 상공회의소나 컨설팅 회사 등에 매물로 나온 회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관심이 있다면 지역별 상공회의소나 경영컨설팅 회사에 전화 몇 통만 돌리면 우량하지만 후계자를 못 찾아 매물로 나온 기업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기업을 물려받을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건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나름대로 해법을 찾는 기업들을 찾아갔다. 침구전문업체 니시카와리빙은 끊긴 후계를 양자를 들여 해결했다. 이 회사는 창업자인 니시카와 니에몬이 1566년 창업해 455년 동안 줄곧 이불이나 요,베개,침대 등 침구제품만 만들어 온 기업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이 216억엔(3088억원),직원 300명인 전통의 우량 기업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인 니시카와 미노루 회장(14대)이 슬하에 자녀가 없어 대(代)가 끊기게 됐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니시카와 회장은 조카를 양녀로 입적한 후 그 남편(사위)을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자식이 없었던 9대 회장 때도 똑같은 방법을 택했다. 이 회사의 요시카즈 기타모토 마케팅 부장은 "일본에선 양자 입적에 대해 사회적으로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며 "훌륭한 인재를 구해 가업을 잇게 되면 회사나 사회에 모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말했다.

비행기 · 우주선 부품제조업체 아오키는 일찌감치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 신성장 모델을 찾게 한 케이스다. 2세 경영인인 아오키 도요히코 사장(67)은 큰 아들이 가업 승계를 거부하고 공인회계사의 길로 들어서자 차남인 아오키 오사무 전무(32)를 설득해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 아오키 사장은 아들을 위해 큰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업태를 단순 부품생산에 국한하지 않고 비행기 제작으로 넓히기로 한 것.2014년까지 1000㎞를 날 수 있는 무인비행기를 직접 만들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는 "지난 5년간 회사 일로 내 휴대폰이 한번도 울려 본 적이 없다"며 "아들이 회사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떡꼬치 하나로 1000년 기업을 하는 게 장수기업의 나라 일본이지만 최근엔 경기 침체와 힘든 일을 피하려는 젊은이들의 경향 탓에 승계가 쉽지 않다"며 "가업승계 전통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도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한 제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상훈 회장은 "가업 승계는 단순히 아버지의 부(富)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 기업의 연속성과 사회적 공헌을 위해 후대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사업을 인계받는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사카=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