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베트남 하노이 그랜드플라자호텔.20여곳의 삼성전자 협력사 법인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환전으로 인한 손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긴급 소집한 자리였다. 그러나 2시간 이상 토론한 끝에 뾰족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A사 법인장은 "협력사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현지 은행의 과도한 환전 프리미엄 요구"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 협력사들이 환전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베트남 삼성으로부터 현지 통화 '동'(VND)으로 받은 납품대금을 국내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에서 미국 달러로 교환할 때마다 수수료로 거래 금액의 10%를 내거나 1주일 이상 기다리는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베트남 역내 거래는 현지 법에 따라 동으로 거래하고 국내로 송금할 때는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달러로 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베트남의 달러 부족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베트남 외환보유액은 129억달러로 동아시아권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다.

평가절하도 한몫했다. 베트남 중앙은행(SBV)은 올 2월 동화 가치를 8.5% 절하,달러당 동화 값이 1만8932동에서 2만693동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한때 "금고 사재기 열풍까지 불었다"는 전언이다. 모두가 달러를 은행 대신 집이나 회사 내에 보관하려고 하면서 금고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김도훈 KORTA 베트남 전문위원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개 외환거래에 문제가 있다"며 "동화 평가절하로 외부에서 자재를 조달하는 현지 한국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은행들도 부족한 달러를 암시장에서 상당량 매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5% 정도의 수수료를 주고 달러를 매입한 뒤 은행 마진 5%를 붙여 기업들에 수수료 10%에 파는 방식이다. 은행 고시환율이 달러당 2만동이라고 가정하면 중소기업이 1달러를 사기 위해 2만2000동을 내야 하는 셈이다.

베트남 정부도 문제점을 알고 있다. 예금 금리를 동 14%,달러 2%로 각각 책정해 달러 가치를 끌어내리려는 정책을 비롯해 암시장 환전소 단속 등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실효성은 없다는 게 현지 기업의 반응이다.

삼성도 딜레마에 빠졌다. 모른 척할 수도, 부품 단가를 올려주기도 쉽지 않다. 고민 끝에 '3자 무역' 카드를 내놓았지만 반응이 신통찮다.

현지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협력사 본사가 거래 당사자가 되고 협력사 현지 법인은 임가공 업체를 맡는 게 3자 무역"이라며 "재고가 늘어날 공산이 크고 서류 절차 등 업무량이 늘어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전했다.

협력사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문제 해결을 위해 베트남 정부에 건의하는 등 노력은 하고 있으나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