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금 일시 빠져도 안전…불안심리 차단
한은 보유액은 대외공개…은행·기업 활용 '방파제'
정부가 준(準)외환보유액을 쌓겠다는 것의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의미다. 외부에 투명하게 노출되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과는 별개로 이중의 안전장치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 어떻길래
정부가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현재 3121억9000만달러다. 이는 단기외채 1497억달러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즉각적인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일어나더라도 대외지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외환당국의 판단이다.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인 '3개월 상품수입액'1351억달러를 더하더라도 2848억달러로 약 300억달러의 여유가 있다. 3개월 동안은 외화공급이 완전히 끊기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과 300억달러,일본과 100억달러 등 4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유효한 상태다. 이는 구속력 있는 커미티드라인(committed line)이어서 비상시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는 돈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는 충분하지만 불안심리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에 미흡하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중 20%가 일시에 빠져나간다고 가정할 경우 필요한 적정 외환보유액은 3848억달러로 지금보다 700억달러 이상 추가로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시에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더라도 외환시장이 심리적 공황에 직면하지 않을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불안심리 원천차단 위한 플랜B
지난주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3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에서 원 · 달러 환율은 1100원을 넘어섰다. 불과 이틀 만에 역외선물시장에서 환율이 50원가량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추석 직후 개장된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30원 이상 올랐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심리도 작용했지만 환투기 세력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NDF 시장에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실효성도 없고 대외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NDF가 외국인과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된 측면이 있지만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국내에 달러를 들여오면서 NDF에서 헤지를 많이 하는 만큼 자칫 실수요 달러 유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투기세력에 패 노출되지 않아야
정부가 준외환보유액이라는 다소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현실적으로 한은에 무한정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은의 '숫자'는 매월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만큼 전략적으로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외환보유액 3122억달러는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이라며 "추가로 쌓을 경우 미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환율상승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정부는 은행과 기업 등 실수요자 중심으로 1차 방파제를 쌓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다만 정부는 무엇보다 한국의 외환시장 특성상 쏠림현상이 심하고,실수요 측면보다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한 달러자산 확대나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해외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것도 외화조달 루트를 다양화함으로써 투기세력이 시장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다.
당국은 그러나 목표금액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유로존의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 실사는 한번 해보겠다는 여유를 부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