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숙명은 상상과 현실의 간극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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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 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스펙터클' 원조
쥬라기 공원·아바타…영화기술 눈부신 발달
앞으로 나올 영화?…'증강현실' 확장판 될 듯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스펙터클' 원조
쥬라기 공원·아바타…영화기술 눈부신 발달
앞으로 나올 영화?…'증강현실' 확장판 될 듯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인 1895년 12월28일.새해를 사흘 남겨두고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Grand Cafe)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 영화가 상영된 날이다. 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는 문화 예술인 33명을 카페에 초대했다. 1프랑씩을 관람비로 지불한 이들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불이 꺼지고 뤼미에르 형제가 영사기를 작동시키자 카페 한 쪽 벽면이 밝아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관람객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페 밖으로 도망 나왔다. 화면 속의 거대한 기차가 이들을 향해 달려왔기 때문.뤼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필름에는 증기 기관차 한 대가 시오타역을 향해 들어오는 15초가량의 영상이 기록돼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악한 흑백 화면에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거대한 기차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33명의 관람객들은 영화가 주는 '스펙터클'을 최초로 경험한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의 숙명은 새로운 자극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는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극적인 연출을 가하는 대신 사람들이 공장에 출근하거나('공장으로의 출근')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잔디에 물을 주는('스프링클러의 작동') 등 일상 생활의 모습을 담았다.
사람들은 처음에 새로운 기술의 출연에 열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히 화면이 움직이는 것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식하는 순간,영화 속의 동영상은 더 이상 신기하지도,자극적이지도 않았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것이 영화의 숙명으로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상영회로부터 7년이 지난 1902년,마술사 출신의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는 새로운 영화를 공개했다.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이 지은 '지구에서 달까지'를 각색한 최초의 SF영화 '달세계 여행'이다. 한 천문학자가 대포로 발사한 로켓에 올라타 달을 여행하며 외계인과 싸운 뒤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초당 16프레임에 14분 남짓한 플레이 타임을 가진 이 작품은 현대적 영화 기법들을 모두 동원했다. 필름을 이어 붙여 새로운 장면으로 전환시키는 편집은 물론 화면이 차츰 나타나거나 없어지는 페이드인,페이드아웃 기법도 사용했다. 현재 애니메이션 등에서 많이 활용하는 스톱모션 기법도 멜리에스 감독이 이 영화에 처음 도입했다.
◆"현실은 가상만큼 유령 같아질 것"
영화는 기술의 최전선이었다.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 감독 이후 소리를 추가했고 밝고 어두움만이 있던 화면에는 총 천연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기술적인 혁신이 나타날 때마다 열광했다. 이 같은 진보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스펙터클'의 강도는 비약적으로 세졌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는 공룡과 인간이 위화감 없이 한 화면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쥬라기 공원').2009년에는 제임스 캐머런이 영화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평면을 넘어 입체를 표현해내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아바타').현실을 뒤좇는 것에서 시작한 영화가 어느덧 현실을 뛰어넘으려 하는 것이다.
독일의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그의 책 '피상성 예찬'에서 "가상은 현실만큼 실재적이고,현실은 가상만큼 유령 같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플루서는 가상과 현실의 차이를 '밀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실이 30㎝ 자와 같다면 가상은 자에 그려진 눈금이란 것이다. 눈금이 촘촘해질수록 가상은 한없이 현실에 가까워진다. 기술의 발달로 이 차이가 계속해서 좁혀지고 마침내 사라지는 단계가 온다면 플루서의 말처럼 '현실'과 '유령'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올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개인적으로는 현재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증강현실'의 확장판이 아닐까 싶다. 스크린조차 필요없이 우리네 현실 위에 그대로 영화가 덧씌워져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이쯤 되면 과연 영화라는 매체가 남아 있을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는 영화다"는 주장을 배격할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이승우 IT모바일부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