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대학이 가장 빨리 사라질 나라
한 국가 안에 있는 대학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미래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글로벌 유니버시티를 말하는 이들은 유럽에서의 대학 통합,미국 명문대의 온라인 공개강좌 확산을 그 증거로 들이댄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6년 유엔 미래사회보고서다. 한국이 저출산과 해외유학 급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020년 초등학생이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하위 15%에 해당하는 43개 대학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대학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해 주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그 동력이 얼마나 갈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어차피 반값등록금에 떠밀려 나온 것이 이번 구조조정이다. 당장 내년에만 1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정부로서는 부실대학까지 지원하느냐는 비난을 일단 피해보자는 의도가 더 커보인다. 해당 대학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 100개 이상의 대학들이 생겨났다. 교과부는 모든 책임을 대학으로 돌리지만 대학정책의 실패가 가려질 수는 없다. 43개 부실 대학에 지금까지 국민세금이 흘러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엉터리 평가를 했거나 정치적 로비 또는 부정부패가 있었을 게 틀림없다. 지난해 학자금 대출이 제한됐던 23개 대학에 정부가 그 해에만 수백억원을 지원했다는 것 아닌가.

감사원은 이런 부실대학들에 재정지원이 이뤄진 경위부터 낱낱이 캐야 한다. 벌써 해당 대학들은 재정지원제한으로부터의 조기 해제를 공언하고 있다. 이미 부실대학을 지역적으로 배분하는 등 정치적 고려를 거친 게 이번 구조조정이다. 정치권이 총선,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어쩌면 부실대학들은 교과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학의 포로가 됐다고 굳게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좋다. 부실대학들이 저항해도 어차피 하위 15%가 문 닫는 건 시간문제다. 지금 추세면 몇 년 내 자연 도태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면죄부를 받은 85%의 대학들이다. 그들도 생존을 보장받은 건 결코 아니다. 상위 15% 조차 위험하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전 세계 대학순위 2011/2012'에서 상위 20개 대학 중 미국은 13개를 차지했다. 확연한 쏠림현상이다. 다른 많은 대학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할 증거일 수 있다. 서울대가 42위로 올라섰다고 우쭐해하지만 그 앞에는 아시아에서만 홍콩대(22위) 일본 도쿄대(25위) 싱가포르 국립대(28위) 일본 교토대(32위) 홍콩 중문대(37위) 홍콩 과기대(40위) 등이 있다. 뒤로는 중국 베이징대(46위), 칭화대(47위)가 바짝 뒤쫓고 있다.

상위 15%도 세계적 잣대로 보면 언제 부실대학으로 전락할지 모를 상황이다. 경제학자 폴 로머가 신성장이론에서 인적자본을 강조했지만 그것이 대학생 숫자와 비례하는 시대는 끝났다. 1968년 대학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럽경제가 쇠퇴한 이유도 일자리가 없는 분야에서 교육기회가 크게 확대된 탓이다. 세계화 시대에 어떤 분야가 경제를 주도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대학은 도태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의 하향 평준화식 대학정책,기득권 대학들의 대학 내 구조조정 저항이 겹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세계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대학이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는 역설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