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년 9월1일 태양왕 루이 14세가 세상을 뜨자 귀족들은 숨막히는 베르사유를 벗어나 대대적인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오랜 세월 태양왕의 위세에 눌려 기지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귀족들은 그 무거운 권위 의식과 위압적인 건축물에서 벗어나 저마다 파리로,파리로 달려갔다. 이런 움직임의 선봉에 선 것은 나이 어린 루이 15세의 섭정 오를레앙 공 필립이었다.

그는 섭정의 자리에 오르기 무섭게 자신의 집무실을 파리 루브르 궁전 부근의 팔레 루아얄로 옮겼다. 호시탐탐 베르사유를 빠져나오길 고대하던 귀족들은 이제 상전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달콤한 파리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해방감에 젖은 귀족들은 바로크 시대의 권위주의와 도덕적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파리 중심가에 아기자기한 저택을 마련,살롱을 열어 명사들과의 재담을 즐기는 한편 매력적인 귀부인들과 가벼운 사랑 놀음을 벌인다.

유명 인사와 사귀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밋빛 삶의 무대가 된 새로운 건축은 바로크 시대의 건축처럼 딱딱하고 위압적이어서는 곤란했다. 각진 기둥으로 장식한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실내는 로코코 양식으로 불리는 부드러운 곡선 문양을 장식한 평면으로 대체됐다.

그런 경쾌한 공간에 권력자의 초상화나 무거운 종교적 주제의 그림이 걸린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귀족들이 원한 새 시대의 그림은 이른바 '페트 갈랑트'로 불리는 야외에서의 흥겨운 파티,매력적인 여인과 연애하는 모습을 다룬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새로운 그림이 경박함으로 흐르지 않고 전통 회화가 지닌 격조를 그대로 유지하길 원했다. 그 어려운 숙제를 푼 장본인은 장 앙투안 바토(1684~1721)라는 젊은 화가였다.

그는 귀족들의 이율배반적인 요구를 참신한 무대장치를 도입함으로써 해결했다. 그것은 귀족들의 가벼운 사랑놀음이 벌어지는 배경을 역사적 혹은 기념비적인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경박한 행위를 역사적,신화적 맥락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극단의 무대장치를 제작하며 호구를 해결했던 화가의 힘겨운 과거가 뜻밖에도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바토가 1717년 왕립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기 위해 제출한 '키테라 섬의 순례'는 그러한 새로운 양식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작품은 한 무리의 젊은 귀족 남녀가 '미의 여신' 비너스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그리스의 키테라섬을 순례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는 모두 여덟 쌍의 남녀가 등장하는데 조각가 로댕은 이것이 사랑의 여덟 단계를 묘사한 것이라고 봤다. 그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처럼 묘사돼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비너스상이,왼편의 하늘 위에는 어린 큐피드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연인들의 가슴에 열정의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세팅의 변화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볍고 경쾌한 주제에는 그에 적합한 기법이 요구됐다. 연인 사이의 간지러운 사랑의 속삭임은 붓의 터치가 보일 듯 말 듯 잔잔하고 경쾌하게 그려 나가야 제맛이었다.

색채도 무겁고 어두운 것을 피하고 파스텔톤으로 밝고 부드러운 효과를 내는 게 바람직했다. 바토는 그렇게 엷은 톤의 청색,녹색,노랑으로 마치 수채화 그리듯 사랑의 무대를 그려 나갔다. 주변에 늘어선 나무들의 가녀린 가지와 야들야들한 잎은 섬세한 사랑의 감정을 암시하는 소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토는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덧없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감정을 미풍에도 파르르 몸을 떠는 잔잔한 나뭇잎과 우울함을 상징하는 푸른색 톤의 색조에 녹여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인생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들은 더욱 더 사랑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키테라 섬은 바로 그런 현세의 행복과 연애의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길 꿈꾸던 로코코 귀족의 이상향이었음에 틀림없다.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쿠프랭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오르드르'

연인과의 가벼운 사랑 놀음 혹은 축제의 광경을 묘사한 로코코시대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음악은 뭘까. 맑고 가벼운 음색을 특징으로 하는 하프시코드 연주가 제격이다.

바토가 활약한 로코코시대는 하프시코드의 전성시대였다. 피아노의 원조인 이 건반악기는 피아노와는 달리 가죽으로 된 고리로 현을 퉁기는 방식인데 그 경쾌하고 청아한 소리는 궁정풍의 세속 음악을 연주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로코코시대에는 프랑수아 쿠프랭(1668~1733),장 필립 라모,헨델,바흐 등 기라성 같은 하프시코드의 천재들이 등장해 자웅을 겨뤘는데 바흐와 헨델이 종교음악에서 재능을 발휘한 데 비해 '우아한 가벼움'에 탐닉한 이 시대 귀족들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은 쿠프랭이었다.

그는 오르드르(ordre)로 불리는 27개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을 남겼는데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간드러진 이 멜로디는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속삭임이나 야외에서의 흥겨운 축제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 잠시 시름을 잊어봄이 어떨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