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귀성
추석은 지금으로부터 꼭 1979년 전, 신라 유리왕 9년에 시작됐다. 길쌈 경쟁을 벌여 진 편이 이긴 편에 술과 밥을 대접하고 온갖 유희를 즐겼다고 '삼국사기'에 전한다. 수확의 계절에 한데 모여 놀기 위한 이벤트였던 셈이다. 이후 긴 세월 동안 변하고 다듬어져 행복의 원형이 됐다.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는 집이 늘고 있으나 모여 앉아 웃음꽃 피우는 정겨움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던 일 멈추고 서둘러 귀성길에 오르는 것도 그 정겨움의 한자락을 잡아보고 싶어서일 게다. '한동안 뜸했던/친구와 친지,친척 만나보고/모두가 어우러져/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깃발처럼 펄럭이는/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반기룡 '팔월 한가위')
추석을 맞는 감회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는 번듯한 직장에 자리잡았을 테고,누구는 삶의 허방을 디뎌 서러운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그래도 귀성하는 마음은 하나다. '고향이 타향이 된 이들이/고향이 객지가 된 이들이/한가위엔 연어가 되어서/한 옛날 맴돌던 언저리서/술잔에 푸념을 타 마시며/거푸 잔을 돌린다. '(이승복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
오늘부터 추석연휴다. 귀성 귀경 인파가 전국의 길을 메울 것이다. 연휴 끝자락엔 휑하게 아쉬움이 남겠지만 요즘 사는 방식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추석에 내려왔다/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차비나 혀라/있어요 어머니/철 지난 옷 속에서/꼬깃 꼬깃 몇 푼 쥐어주는/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김용택 '섬진강 17-동구')
단 며칠 만이라도 시름 툭툭 털어내고 부담없이 즐겼으면 한다. 무엇보다 길이 막히든 뚫리든 느긋한 마음으로 가고올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