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가문을 빛낸 한 권의 책…그것은 루소의 '에밀'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1828~1910)를 대문호로 만든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어릴 때부터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그는 바깥에서 뛰어놀기보다 책을 파고 들었고,그 속에서 인생의 등불이 될 스승을 만났다. 《에밀》의 작가인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였다. 루소 역시 흉한 외모 때문에 괴로워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런 루소에게 톨스토이는 '동일시 감정'을 느꼈다.

때로는 콤플렉스가 위대한 에너지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로맹 롤랑의 《톨스토이 평전》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루소 덕분에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쓴 최초의 철학적 논문도 루소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루소의 《에밀》과 《고백록》은 내 가슴 깊숙이 감동을 준다. 마치 내 자신이 쓴 것과 같다"고 일기에 썼다. "나는 루소를 숭배하여 그의 모습이 새겨진 메달을 우상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 "

훗날 교육사상가로 더 유명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루소는 《에밀》에서 "가난한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그를 면제시켜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의 교육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균형감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루소는 5명의 아들을 고아원에 버린 일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반면 톨스토이는 9명의 자녀를 직접 가르치며 성실하게 보살폈다.

《에밀》에 감명을 받은 톨스토이는 그의 교육사상을 실천에 옮긴다. 29세 때인 1859년부터 아이들을 억압하지 않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톨스토이 학교'를 만들어 운영했다.

"두 개의 방을 학교로 쓰고 방 하나는 서재로 썼다. 현관에는 차양 아래 작은 종을 새끼줄로 달아 놓았다. 아침 시골마을에는 불빛들이 켜진다. 학교 창문 밖으로 벌써 불빛들이 보인다. 그리고 종이 울리고 30분이 지나면 안갯속에,빗속에,때로는 가을 햇살 속에 하나둘씩,혹은 셋씩 작은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들이 보인다. "

톨스토이가 학교를 열면서 쓴 이 글은 심훈의 《상록수》와 닮았다. 《상록수》는 1875년부터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인 러시아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뜻)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바로 톨스토이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고 톨스토이는 루소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루소를 인생의 '역할모델'이자 멘토로 삼으면서 작가,사상가,교육가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세계적인 명문가를 만든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톨스토이에게 《에밀》은 자신과 세계의 정신사에 위대한 각인을 남긴 징검다리가 됐다. '명문가를 만든 한 권의 책'은 '명문가가 만든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으로 명문가는 더 존경받는 가문으로 발전한다. 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사회적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시대정신'을 한발 앞서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그의 불우한 개인사가 빚어낸 명문(名文)이자 백작 가문의 이름을 빛낸 명문(名門)의 주춧돌이기도 했다.

최효찬 <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문연구원 / 자녀경영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