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나 회고록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저자도 사람이니 감정이 작용했을 수 있고,기억은 완벽하지 않은 탓이다. '힘든 선택들' 역시 반대편에서 보면 사실과 다르다 싶은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26세에 AT&T 평사원으로 입사,45세에 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인물이다.

책은 오너 가족도,이렇다 할 배경을 지닌 것도 아닌 그가 무슨 수로 그처럼 성공할 수 있었는지,여성 CEO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했는지 상세하게 전함으로써 일하는 여성 특히 조직에서 성장,임원을 거쳐 언젠가 사장이 되기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실질적이고 생생한 지침을 제공한다.

'서른 살.여성이란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사람들은 외모로 내 능력을 속단했다. 희롱당하고 유혹당한 적도 있었다. 편견을 깨트리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할 터였다. 더 열심히 준비해야 했다. 20분 안에 상대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

그는 줄곧 남다른 영역에 도전했다. '선택의 위험부담이 클수록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생긴다. ' 정부 조달사업 응찰 중 경쟁자인 보잉사 임원의 성차별적 발언에 울었던 일도 술회한다.

"그는 '여자가 왜 이런 일을 하나. 남편과 아이나 갖지'라고 말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결심했다. 다시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울지 않겠노라,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없다거나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해도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

업무에 대한 구체적 조언도 곁들인다. '비즈니스에서 정말 시너지가 있는지 알려면 본사나 분석가들에게 물으면 안 된다. 영업직원들에게 물어보면 금세 안다. 혼란과 추측을 피하기 위해 의사소통 내용은 반드시 문서로 보완해야 한다. '

HP 회장 노릇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영진은 정부 관료들이 새로 임명된 정치적 인물을 의심하듯 내게 의심을 품었다. 얼마나 버티나 두고 봐야지란 식이었다. 하지만 첫날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일에 착수할 수 있다. ' 그 첫날을 견디고 5년여 동안 HP를 이끌었다. 컴팩 합병 등의 문제로 대주주와 부닥친 끝에 2005년 초 사임했지만 그는 세계 20대 기업 최초의 여성 CEO로서 지구촌 수많은 여성의 역할모델이 됐다.

성공과 좌절 모두 맛본 그의 결론은 분명하다. '멈춰서 있는 건 위험하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때를 맞기 전에 늙는다. 적응과 배움을 멈춘 기업은 희미해지고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얻지 못한다. 한계나 불평등에 갇히기보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더 큰 성취를 이룬다. '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