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권력이 만든다. 그 권력은 분노가 아닌 지정학적 위치,인구 등 근본적인 조건으로부터 나온다. "

국제정세 분석전문가이자 '100년 후'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이 한 말이다. 인구구조와 교육수준,지정학적 위치 등을 통해 한 국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1년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짐 오닐(현 회장)이 브릭스(BRICs)란 단어를 처음 만들 때도 인구를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브릭스 국가의 인구는 전 세계의 40%를 차지해 잠재력이 높다"며 "2050년대가 되면 브라질 중국 등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 말은 불과 10년 후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경영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10년 후 미래'의 저자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 교수는 그러나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 요인을 '딥 팩터(deep factors)'란 용어로 정리했다. '단기간에 변하기 힘든 내재된 경제요인'을 뜻하는 딥 팩터가 한 국가의 부(富)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초로 미국이 10년 뒤에도 세계 최대 경제대국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일시적으로 미국을 넘어설 수 있지만 그 기간은 길어야 2,3년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앨트먼 교수로부터 세계 경제의 미래와 권력지도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뉴욕타임스 최연소 논설위원,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비영리 컨설팅단체인 노스야드이코노믹스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가 뭡니까.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성장 추세로 볼 때 중국이 차기 패권국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의 도시화와 경제 발전의 속도가 미국 경제가 가장 가파르게 성장했던 때보다 더 빠르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실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약 10%에 달합니다. 이는 미국 경제 성장 절정기의 성장률(약 7%)을 넘어서는 것이죠.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앞서더라도 순간에 그칠 것으로 봅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중국도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 온 도시화가 급속히 둔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약점입니다.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또 다른 딥 팩터가 필요합니다. "

▼중국의 어떤 요인이 문제입니까.

"중국을 지배하는 딥 팩터 중 하나가 유교문화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고,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문화죠.이런 문화는 성숙한 경제체제에서는 기업경쟁력 강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입니다. 서열 위주의 사고방식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경쟁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문화에 실망한 젊은 인재가 회사를 떠나게 만들어 기업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어렵게 합니다. 중국의 거대 관료조직도 문제입니다. 관료조직은 농업 중심의 중국을 단기간에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통제하는 관료사회는 결국 기업들의 혁신활동을 방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이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중국 관료사회가 투명하지 못한 것도 약점입니다. "

▼미국도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과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상업주의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아프리카의 문화가 뒤섞인 미국에는 귀족이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출신 성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은 누구나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 전국에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업주의적 문화는 미국 자체를 '세일즈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의 집합체입니다. 미국이 갖고 있는 마케팅이나 판매전략은 그 자체로 수출품일 뿐 아니라,많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미국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

▼요즘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유로존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장기적으로 볼 때 유럽 단일통화체제는 무너질 것입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는 일부 국가의 재정 파탄에서 비롯됐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유럽 전체로 번질 것입니다. 회원국들이 경제성장의 동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의 상당수 국가들은 20~30년 뒤에는 고령화로 인해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게 될 것입니다. 노령화로 노동가능인구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늘고 세수(稅收)는 줄게 됩니다. 결국 유럽 각국은 급증하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거나 재정파탄에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 등 서유럽 강국들은 남유럽과 동유럽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연합의 정치적인 협정들의 효력은 유지될지 모르나 단일 경제체제는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역사적으로 세계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는 바뀌어왔습니다. 금융허브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경제 중심지가 생길까요.

"모바일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거래하거나 일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개인은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살면서 일을 하고 싶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뉴욕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 대신 몬테비데오 등의 해변도시에서 살면서 수천마일 떨어진 직장에 취업해 일하는 것입니다. 즉 '라이프스타일 허브'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허브에는 안락한 삶을 꿈꾸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몰려들고,이들이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도 발달할 것으로 봅니다. "

▼미래 유망산업을 꼽는다면.

"대체에너지 산업이나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개발하는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원유뿐 아니라 구리나 기타 금속자원들도 점차 고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IT기술 개발과 정보 관련 산업,서비스 산업들이 유망한 산업이죠.특히 세계 경제가 통합되면 될수록 국제거래를 중개하는 미들맨 산업이 각광 받게 될 것입니다. 대표적인 미들맨은 유명 상표의 의류를 현지 문화에 맞게 변형해 주는 디자이너를 꼽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규정이나 문화를 갖고 있는 사업을 도와주는 현지의 변호사,은행가,부동산중개인,로비스트 등도 포함됩니다. "

▼세계 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

"정치 · 경제적 의사결정권자들의 근시안적인 사고입니다. 근시안적인 사고의 결과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를 야기했고,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공적,민간부문들의 지도자들은 당장 다음달이나 내년의 상황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10년이나 20년 뒤를 내다보지 않는 것이죠.중요한 것은 긴 안목을 갖고 현재의 풍요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합니까.

"한국은 민간부문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나라입니다. 과학기술 개발이나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한국은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서구국가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그들을 따라잡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지만 한국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중국처럼 관료적인 문화 때문에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약점입니다. "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