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이 29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이임식을 가졌다. 신임 사장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기 만료일에 떠나겠다"고 결연히 선언한 그는 이임사를 읽어내려가다 눈물을 훔쳤다. 3년간 한전을 이끌었던 경영자로서 회한이 적지 않았음을 진솔하게 내보였다. 국내 최대 공기업에 경영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3년을 바쳤는데도 전기요금이 꽁꽁 묶여 회사가 엄청난 적자를 냈고,14명의 소액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당한 것이 못내 억울했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김 사장은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민간기업인 출신이다. '책상물림'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그는 LG전자 부사장이 돼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기업 일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왔다. 혁신의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가 말했던 "5%는 어려워도 30%는 쉽다"는 구호는 기업경영 혁신의 상징어 중 하나였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첫 한전 사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컸다.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전 사장 자리는 경영능력보다는 정치력이 더 필요한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간기업인 출신인 그가 입기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결론적으로 김 사장은 자신의 강점을 한전에 와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한전은 지금도 정부의 강력한 통제 속에 있다. 최고경영자로서의 권한과 자율은 여전히 적다.

김 사장은 경영 합리화와 수익성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전기요금 현실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와 여러 번 갈등만 빚었다.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간에서 우수한 경영자를 영입하더라도 공기업 혁신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청와대와 정부가 한전의 새 사장을 심사숙고하며 뽑는다 하더라도 경영 자율권을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29일 신임 한전 사장에 내정된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이 민간기업인 출신으로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 없다. 이것이 김쌍수 한전 사장이 보인 눈물에서 정부가 배워야 할 점이다.

박신영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