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모호성 전략..한미 '사전조치' 압박
위성락 본부장 中에 '대북 역할' 요청할듯

북ㆍ러 정상회담이 24일 마무리되면서 남북-북미 후속대화를 겨냥한 6자의 물밑 외교전이 가열되고 있다.

발리 남북회담과 뉴욕 북미대화에 이어 6자회담 재개의 길목이 될 '2라운드'의 논의방향과 의제설정을 둘러싼 고도의 기싸움이다.

우선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후속대화의 밑그림을 놓고 '우방'과의 조율을 일단락지었다는 점이다.

중국과는 이달초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간 6자회담 수석대표급 회동, 러시아와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그 계기였다.

이는 북한이 조만간 내부 입장정리를 통해 '다음 수순'에 착수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 수순'은 남북-북미 후속대화 개최 제안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관전 포인트는 북한의 후속대화 제안은 한미일이 그동안 요구해온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한 '반응'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는 북한이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한 '답'을 내놔야 후속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어떤 수위와 내용으로 반응하느냐는 곧바로 후속대화의 의제설정과 함께 비핵화 논의의 진전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ㆍ러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북한 측 태도는 애매모호해 보인다.

조건없이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하면서도 비핵화 사전조치 일부를 수용할 것처럼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WMD) 실험을 잠정 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됐다'고 언급한 대목이 미묘한 논란을 낳고 있다.

이 조치는 한미가 그동안 요구해온 비핵화 사전조치의 일부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6자회담 재개의 사전조치로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6자회담 의제로 논의할 것인지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도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 같은 모호한 태도는 후속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모양새는 갖추되, 내용상으로는 양보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반응을 탐색하며 '속도조절'을 꾀해온 한미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후속대화 추진을 겨냥한 '사전정지' 작업이다.

특히 후속대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북한이 보다 전향적인 사전조치 이행 의지를 보이도록 '압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한미의 입장이 압박 일변도는 아니다.

대화의 동력을 계속 이어나가되, 북한으로부터 좀 더 확실한 태도변화를 유도해 대화국면에서 유리한 협상환경을 만들어나가려는 포석이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25일 방중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설득해 보다 분명한 의지를 표명하도록 하는데 주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단 관망세를 보이고 있으나 후속대화 추진을 위한 '역할'을 적극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위 본부장은 방중에 이어 미국을 방문해 후속대화의 의제와 방향에 대한 한미 간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다시금 한미의 '정리된' 대북 메시지가 발신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이 비핵화 사전조치에 어느 정도 '화답'하고 이를 한미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후속대화의 밑그림과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북한과 한미 양측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려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어 상황에 따라 후속대화가 조기 가시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비핵화 사전조치의 수위를 놓고 북미간에는 뉴욕채널을 통해 활발한 물밑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비핵화회담을 놓고도 한결 유연해진 기류가 읽히고 있다.

북한은 대미 협상주체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으로 세우고, 대남 협상주체를 리용호 외무성 부상으로 이원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선(先)남북-후(後)북미대화'를 고집하지 않고 남북-북미대화의 선후 문제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달초 남북-북미대화 '2라운드'의 막이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다.

한미는 UEP의 중단을 비핵화 사전조치의 가장 핵심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를 '사전조치'가 아니라 '6자회담 의제'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UEP 문제를 비켜갔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북-북미 후속대화가 열리더라도 UEP 처리문제가 6자회담 재개의 결정적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