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공 요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열정'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를 늑대의 습성에 비유했다. 그는 버팔로나 호랑이가 늑대를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늑대는 한 마리가 덤비고,안 되면 떼로 덤비고,그것도 안 되면 그룹으로 에워싸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늑대의 열정'이다. 손 회장은 "경영자와 조직원이 늑대의 열정을 갖고 일한다면 덤비다 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언젠가는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엑슨모빌을 누르고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른 애플의 성공을 논할 때도 열정이란 단어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왼손잡이인 스티브 잡스가 '나의 왼팔'이라고 불렀던 제이 엘리엇 애플 전 수석부사장은 애플의 성공 요인으로 '열정의 확산'을 꼽았다. 잡스의 열정이 직원들에게 전파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최근 '아이(i) 리더십'이란 책을 낸 그로부터 애플의 성공 요인과 이를 다른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엘리엇은 애플을 떠난 뒤 소프트웨어 회사 누벨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i) 리더십'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새로운 리더십의 형태입니다. 경영자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직접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경영자의 철학과 비전,필요성이 담겨 있는 거죠.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제품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완벽하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직접 실행에 옮깁니다. 그게 아이 리더십의 전형입니다. "

▼직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잡스의 제품에 대한 열정은 직원들을 자극합니다. 애플의 성장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잡스는 스스로 프로젝트를 관리합니다. 제품 개발과 디자인 구상에도 팀원의 일부로 참여해 관여합니다. 그는 불쑥 직원들을 찾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자신처럼 고객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CEO가 제품 그 자체가 돼 직원들을 열정 속으로 몰고가는 데 성공한 거죠.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입니다. "

▼CEO의 열정만으로 혁신적이고 창조적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열정과 함께 회사 내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조건 경영진의 방침에 따르는 '예스맨'을 키워내는 것은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경영자는 귀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

▼애플도 그런 문화를 갖고 있나요.

"잡스는 애플 직원들에게 '해군'이 아닌 '해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해군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일하지만,해적은 자유롭고 공격적입니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려면 해적 같은 사람들이 돼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는 서로 부딪칠 일이 없는 사람들도 한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며칠씩 워크숍을 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계속 먹고 놀며 브레인 스토밍을 하다 옵니다. 성과를 올려줬을 때는 확실하게 보상도 해줍니다. 돈과 주식만이 보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성과를 낼 때마다 샴페인을 따 함께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들고,메달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잡스는 이를 통해 직원들의 노력에 그가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지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것을 눈여겨봐야 합니까.

"회사와 제품에 대한 열정이 중요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입사 후에도 제품을 자신의 일부라고 느끼며 끊임없이 혁신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소비재 생산 기업에서는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

▼애플의 채용 기준은 무엇입니까.

"독특하지만 애플 입사의 기본 조건은 '애플 열광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잡스는 채용 결정을 내릴 때 대답의 내용보다는 답변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애플 제품에 완전히 반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죠.모든 직원이 본인이 제품의 얼굴이라고 여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의 연장선상입니다. "

▼'아이(i) 리더십' 한국어판에는 삼성에 보내는 글이 담겨져 있는데요.

"삼성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 능력과 가격 경쟁력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는 윈도 기반으로,휴대폰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애플처럼 동일한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IT 업체들 간의 특허 분쟁이 격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요.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허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역을 다른 경쟁사로부터 지켜내고,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허 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업체들 간 특허 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애플은 아주 공격적으로 특허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

▼'잡스 이후의 애플'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잡스의 리더십이 애플을 키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없다고 해서 애플의 미래가 어둡지는 않습니다. 직원들은 잡스의 리더십을 본받고 있으며,이미 회사 경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티머시 쿡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유망한 차기 주자입니다. 조너선 아이브 수석부사장 역시 창조적인 디자인의 대가입니다. 필 실러 마케팅 수석부사장도 제품 구상에 여념이 없습니다. 잡스가 떠나도 그의 리더십은 애플에 남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중한 리더가 사라졌을 때도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

▼향후 애플이 어떤 분야를 강화할 것으로 봅니까.

"잡스는 스마트TV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애플의 iTV를 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업체 픽사를 인수해 일했던 경험을 살려 iTV에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시키고 싶어합니다. "

▼애플은 최근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데 이어 엑슨모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로 등극했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힘입니다. 올해 3분기(4~6월)에 아이폰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2034만대를 팔았습니다. 아이패드 판매량은 3배나 늘어난 925만대입니다. 애플이 다른 업체들에 비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데 탁월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애플은 다른 업체들뿐만 아니라 애플의 기존 제품을 뛰어넘는 상품으로 고공 성장하고 있고,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