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업 네트워크가 구축된 상황에서 국내용 소프트웨어만 만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이휘성 한국IBM 사장(51 · 사진)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소프트웨어산업이 갖고 있는 '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세기에 철강이 '산업의 쌀'이었다면 21세기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산업의 혈액'인 시대"라며 "IT 가운데서도 각종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산업도 본질적으로 반도체,자동차산업 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같은 제조업들이 오랜 시간과 투자를 거쳐 발전해온 것처럼 소프트웨어산업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표준화한 도구와 절차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유지 · 보수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며 "이것이 가능해져야 소프트웨어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런 흐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화'를 꼽았다. "1년에 조(兆) 단위의 연구 · 개발비를 쏟아붓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 정면승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분야를 파고들어 그 부분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이를 통해 인적 자원을 쌓고 노하우를 축적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로 IBM은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IBM도 만들어진 지 44년이 지났다. 한국IBM은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계 회사이자 IT 회사다. 그 전까지 수작업으로 처리했던 인구통계 조사에 컴퓨터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은행에 처음으로 자동 입 · 출금 체계를 만든 것도 한국IBM이었다.

이 사장은 "한국IBM은 기술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기업문화와 다양한 복지 시스템도 한국에 들여왔다"며 "최근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바일 오피스도 이미 1996년에 도입하는 등 선진 기업문화를 국내에 들여오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1985년 한국IBM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줄곧 이 회사에서만 일해왔다. 그는 "30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1980년대 신문사들의 활판 인쇄 시스템을 컴퓨터 기반으로 바꾼 일과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보기술 분야를 맡았던 일이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라고 꼽았다.

지난 4월 농협 해킹 사건에서 한국IBM 직원의 노트북이 악성코드 작동 경로로 쓰인 것에는 말을 아꼈다. 그는 "우리도 검찰이 발표한 내용 이상으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다"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