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시중은행들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8~4.2%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금리는 보통 연 1~2% 정도다. 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7%(전년 동월 대비)였다.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빼 계산하는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이자에 붙는 세금까지 감안하면 '돈을 은행에 맡길수록 손해'다.

그런데도 은행으로 뭉칫돈이 밀려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기예금과 MMDA 등 은행 저축성예금 잔액은 지난 16일 804조원으로 7월 말(792조9000억원)보다 11조1000억원 늘었다. 하루 7000억원가량이 예금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다. 자금 유입 속도는 6월(하루 평균 1266억원)의 5.5배,7월(하루 평균 3645억원)의 2배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이자를 주는 은행이 시중자금의 '블랙홀'로 떠오른 것은 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커지고 국제 금융시장이 공포에 휩싸인 결과다. 금리가 낮더라도 돈을 안전하게 굴리려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달 들어 저축성예금에 유입된 11조1000억원의 시중자금 중 88%인 9조8000억원이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알려진 지난 8일 이후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증시에서는 대기성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로 돈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 4조1283억원,7월 1조3206억원이 MMF에서 빠져나갔지만 이달 들어서는 지난 18일까지 6조1809억원이 순유입됐다. 특히 지난 17일 하루에만 3조2000억원이 몰렸다.

안전자산인 채권 금리도 연일 하락세(채권가격 강세)다. 20년 만기 국고채는 지난 19일 연 3.89%에 거래를 마쳐 2006년 1월 상장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연 3.84%로 2004년 12월 (연 3.81%) 이후 최저치다.

김현욱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부실 위험에 빠진 유럽 은행이 흔들리고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 한국 경제도 어떤 충격에 빠질지 모른다"며 "자금시장에서도 상당기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