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배정원 씨는 상사에게 중요한 업무 보고를 하던 도중 대출 안내 문자를 받았다. 휴대폰 메시지를 힐끔 확인한 그는 보고가 끝난 뒤 현대캐피탈 상담센터로 전화를 했다. 최근에 부쩍 잦아진 대출 소개 전화에 항의하고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따져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담센터 직원으로부터 "문자에 적힌 업체 이름을 자세히 한번 봐달라"는 말을 듣고 메시지를 확인한 뒤 실소를 터뜨렸다. 문자를 보낸 업체는 현대캐피탈이 아닌 현대'케'피탈이었던 것.현대케피탈은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였다.

◆"고소해봐야 헛고생"

금융업계가 유사 명칭으로 고객을 현혹하는 불법 대부업체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부업 이자율 상한선을 낮추면서 등록을 포기한 불법 대부업체들이 무차별적으로 전화 공세를 벌이면서 마케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계열사를 둔 대기업들이 불법 대부업체의 주요 타깃이다.

현대캐피탈은 올 들어 우후죽순 생겨난 현대'케'피탈 가운데 한 곳을 최근 경찰에 고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수사기관에 고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유사 명칭을 쓰는 불법 사금융업체가 워낙 많이 생겨 우리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을 내세우는 곳도 많다. 최근 '삼성캐피탈'로부터 문자를 받았다는 회사원 김정국 씨도 배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삼성캐피탈은 2004년 삼성카드에 흡수 합병돼 지금은 없다. 삼성카드는 올 들어 '삼성캐피탈'을 내건 사금융업체 네 곳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겨나는 탓에 고객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합병 사실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유사 명칭에 당할 수밖에 없다"며 "고객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응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회사 이미지도 깎일 수밖에 없어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처지다. NH캐피탈을 계열사로 둔 농협은 '농/협.케.피.탈' '농협capital' 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신한은행을 자회사로 둔 신한금융은 "고객님은 무보증 무방문 당일 1000만원 승인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신한금융'이라는 불법 업체에 당하고 있다. 하나금융도 불법 업체 '하나금융'과 '하나capital론'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등록 대부업체 1만개 밑으로

유사 명칭으로 고객들을 현혹하는 불법 업체가 최근 급속히 늘어난 것은 갈수록 지하화하는 대부업계 현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 등록 대부업체(대부중개업 제외)는 9693곳으로 2002년 대부업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 1만개 밑으로 떨어졌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등록 대부업체의 이자율 상한선이 연 49%에서 연 39%까지 낮아지면서 폐업을 신청하는 대부업체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 대부업체 감소는 대부업체들이 최고 이자율 제한 및 당국의 지도 · 감독을 피하기 위해 등록증을 반납하고 지하로 들어간 탓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문제는 고객들이 불법 업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전화했을 때 대출 조회기록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 사금융업체에 조회기록을 남길 경우 신용도에 문제가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제도권 금융사를 이용할 때 대출 거절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