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증시', 마켓리더에게 길을 묻다④]김기현 "금리인상을 기다리자"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발(發) 신용위기에서 비롯된 이번 금융시장의 카오스(대혼란)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과거 리먼 사태를 불러온 레버리지(차입) 위기가 이제서야 재정문제로 확대된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채권시장의 선도자'로 불리는 김기현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 본부장(43·사진)은 18일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잇단 주가폭락으로 대혼란에 빠진 '8월 금융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시장은 대체로 위험자산인 주식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번 약세장이 오히려 반가운 일일 수 있다. 실제 외국인들의 국채 매입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또 한국은행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정책금리)를 계속 올리면 기존 채권에 대한 실망매물이 쏟아지는데 연내 기준금리(현재 3.25%)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재정위기의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약세장에선 채권시장의 냉철한 시선이 반대편에 서서 증시폭락을 진단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김 본부장의 조언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채권시장엔 독(毒)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증시에는 상승 시그널(신호)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불안 탓에 금리인상이 몇차례 지연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일반투자자들보다 정보가 빠른 정부가 앞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글로벌 경기가 안정화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하지만 김 본부장의 전망은 유럽지역의 부채조정과 미국의 재정 건전화가 먼저 진행돼야 국내 기준금리 인상도 가능하든데 방점이 찍혀있다.

그는 "한 마디로 증시가 단기간에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워 보인다"며 "주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라면 긴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매달 돈을 넣는 적립형 주식투자자라면 지금이 최적기의 투자시기"라고 덧붙였다.

달러화 대비 원화의 움직임도 꼭 눈여겨 봐야할 투자요소다. 이번 글로벌 재정위기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비교했을 때 뚜렷한 차이점이 바로 원화 강세(환율하락) 현상이라는 것.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다르게 현재 국내의 경제체력은 많이 개선돼 있는 상황"이라며 "작년까지만 해도 '선진국이 재채기하면 우리나라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원화는 항상 대표적인 불안전 자산으로 여겨져 글로벌 위기가 터질 때마다 외국인의 자금이탈이 급속도로 진행됐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위기 시 원화는 선진국들의 통화인 유로화나 달러화 대비 강세(환율하락)를 보였고, 이 때문에 오히려 국내 채권에 매수세가 몰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채권을 매수할 때 서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외국인들의 경우 이자(금리)뿐 아니라 원화 강세도 아주 중요하게 본다"며 "원화의 국제적 지위가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다른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일 경우 해외투자자들의 국내 채권 수요는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올해 안에 원·달러 환율이 1000원선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김 본부장은 예측했다. 조만간 세 자릿수 환율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금리인상 시기는 언제쯤일까. 유럽지역과 미국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재정의 건전화가 진행된 뒤 비로소 글로벌 경기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는 "국내 경제상황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비중이 70% 육박할 정도로 높은 대외의존도"라며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야 국내 경제도 안정적으로 경기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위기는 3년전 서브프라임모기지 등 레버리지(차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터진 리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쓴 양적완화정책(Q1, Q2)의 후유증이 원인"이라며 "더욱이 미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해오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기 때문에 앞으로 (만기채권) 조달금리 인상 여파 등으로 Q3 역시 효과를 거두기 힘들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계에 다다른 양적완화정책이 아닌 미국과 유럽의 자생적인 해결책만이 지금으로선 유일한 돌파구라는 얘기다.

그는 "1997년 정부가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해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민간기업들이 매입해 줘 외환위기(IMF)를 극복해낸 기억을 떠올리면 된다"며 "유럽 역시 재정위기에 처한 정부의 부채문제가 관건인데 여러 국가들(채권 매입자)이 나서 부채를 줄여주거나 다시 채권을 매입해 부채의 재조정을 해줘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부족한 재정이 개선돼야 위기탈출의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김 본부장은 내다봤다.

그는 "실물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들의 고용과 생산이 늘어난 뒤 소비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아무래도 당분간 전 세계가 재정위기 탓에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