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린시절 병원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 당시엔 좋은 시설을 갖춘 중대형 병원이 즐비한 요즘과는 달리 심하게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아픈 몸과 잔뜩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선 병원에서 차가운 청진기가 몸에 닿을 때나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투명한 약물로 가득 찬 주사기를 가져올 때면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요즘의 병원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소아과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벽지에 놀이시설과 동화책이 가득해 마치 놀이방에라도 온 느낌이 든다. 비단 소아과뿐만 아니라 중대형 병원도 환자들에게 친근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자에 대한 각별한 서비스로 유명한 한 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실에 평소 환자가 좋아했던 색의 조명을 켜주고 미리 선곡해 놓은 음악을 틀어 준다. 항암제 주사실을 찾는 환자들에게는 아이패드를 빌려준다. 주사를 맞는 2~3시간 동안 개인별 건강관리 요령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꽉 막혀있던 검사실을 밖에서 잘 보이도록 개방한 병원도 있다. 얼마 전 인천의 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병원의 진단검사실이 통유리로 돼 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양한 검사를 하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이 밖에 있는 가족이나 다른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결과적으로 병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듯했다.

병원이 더욱 친근하게 변하는 데는 검사기기의 진화도 한 몫 하고 있다. 근래 들어 엑스레이 CT MRI PET 등 각종 의료검사장비는 정확한 진단기능 못지않게 디자인 · 색깔 등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유방촬영기 중에는 장비의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 안정감과 편의성을 높이고,원하는 색깔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있다.

친근하고 즐거운 의료환경이 검사의 왜곡을 줄이고 치료효과까지 높인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은 엄숙한 분위기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 유머가 있는 환경 속에서 더 빠른 회복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의사 패치는 희망 없이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주면서 즐거운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즐거움은 환자의 면역력을 높여 질병을 이길 힘을 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필자는 의료진이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병으로 지친 이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박현구 < 한국지멘스헬스케어 총괄대표 hyeongu.park@siemen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