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는 '금리 상식'…1주일짜리ㆍ3년물 금리差 0.3%P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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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카오스' - 美 제로금리 2년 연장 '후폭풍'
극단적 안전자산 선호로 국고채에 자금 몰려
금리인상 땐 역전 가능성…통화정책 무력화
극단적 안전자산 선호로 국고채에 자금 몰려
금리인상 땐 역전 가능성…통화정책 무력화
채권시장에서 '금리 상식'이 깨지고 있다. 만기가 길수록 금리 차가 벌어져야 정상이지만 요즘 채권시장에선 만기에 상관없이 장기 국고채 금리가 일제히 연 3%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1주일짜리 단기물인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25%)에 수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장기 금리가 떨어지면서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좁혀진 금리 차
3년 만기 국고채는 지난 1일만 해도 연 3.90%였다. 그러나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연일 하락하면서 10일 연 3.45%까지 떨어졌다. 11일에는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연 3.52%로 전날보다 0.07%포인트 상승했지만 여전히 한은 기준금리와의 격차는 연 0.27%포인트에 불과하다.
서철수 대우증권 채권운용부 차장은 "2006년에 국고채 3년물과 기준금리가 0.3%포인트 정도까지 좁혀진 적이 있지만 지금보다는 덜했다"며 "지금은 두 금리가 너무 붙어 있다"고 말했다.
만기가 서로 다른 국고채 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국고채 1년물 금리가 연 3.44%인 데 비해 20년물 금리는 연 3.95%다. 만기가 19년이나 차이나지만 금리 차는 연 0.51%포인트에 불과하다. 만기 10년물도 연 3.92%로 20년물과 0.03%포인트밖에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 국채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2년 만기 미 국고채 금리는 11일 연 0.18%에 거래를 마쳤다. 연 0~0.25%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기준금리와 거의 일치한다. FRB 기준금리는 하루짜리(오버나이트) 금리다.
◆극단적 안전자산 선호
최근 장기 국고채 금리와 단기 금리의 격차가 좁혀진 가장 큰 이유는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 때문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국고채 시장에 자금이 몰렸다. 이 때문에 국고채 금리가 하락(채권 가격 강세)하는 추세다. 미국 시장의 장단기 금리 차 축소도 마찬가지 이유다. '믿을 건 역시 미 국채'라는 인식이 채권 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것도 원인이다. 물가 불안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불안으로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이 힘들어졌다는 전망이 득세하면서 채권 금리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나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활용한 외국인 채권 매수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미국의 초저금리 유지로 달러 약세와 선진국 통화의 캐리 트레이드가 확대될 것"이라며 "원화 채권에 대한 매수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이날 국채선물 시장에서 3254계약(1계약은 1억원)을 순매도하며 7일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섰지만 본격적인 한국 채권 매도라기보다는 차익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정책 무력화되나
전문가들은 최근 채권 금리 하락이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과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한은과 다른 쪽으로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중장기적으로 기준금리를 정상화하겠다는 기조인데 시장에선 대외 악재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가 동결되거나 심지어 인하될 수도 있다고 보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금리 격차 축소가 한은의 통화정책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단기 금리를 조절해 장기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한은의 금리 전달 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며 "시장이 한은의 정책 방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장·단기 금리차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의 차이를 말한다.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는 단기 금리에 비해 시장 수급으로 결정되는 장기 금리가 높은 '단저장고(短低長高)'가 일반적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장기 금리는 3년 만기 국고채와 5년 만기 국고채다. 단기 금리는 한국은행이 은행에서 1주일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할 때 적용하는 기준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이 대표적이다.
주용석/이태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