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업계의 해외 페이퍼컴퍼니와 비밀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 관행이 법원 판결에서 드러났다.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역외 탈세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다른 업체에도 이 같은 비리가 만연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세광쉽핑 대표 박모씨와 세광중공업 대표 노모씨에 대해 최근 내린 판결에 따르면 이들은 국내에 신고하지 않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홍콩지점에 비밀계좌 3개를 만들어 비자금을 입금시켰다. 비자금도 국내에 신고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S사를 통해 조성했다.

S사를 통해 선박 3척을 구입한 다음 이들 선박을 빌려주고 받은 용선료 등을 해외 비밀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었다. 박씨 등은 S사 명의로 비밀계좌 3개를 만들어 2000년 2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4982만여달러(약 498억원)의 비자금을 입금했다.

회계장부에는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선주계정'이라는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관리했다. 다른 선박회사에서 옮겨온 신입사원이 회계팀에 "선주계정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박씨 등은 수년간 선박회사를 운영하면서 이 같은 방식을 이용하면 정부 당국으로부터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비자금은 자녀의 미국 유학경비,가족 오피스텔 구입비,해외골프 접대비,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 세광쉽핑의 비밀계좌 관련 자료는 직원이 윗선의 지시를 받아 숨겨놨다가 이 직원이 검찰에서 은닉 사실을 진술하면서 드러났다.

박씨 등은 재판에서 "S사는 세광쉽핑이 아닌 노씨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회사"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해운사들이 세광쉽핑으로부터 선박을 빌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