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8시50분.'아,제발'.직장생활 17년차인 강모씨(45)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았다. 지난주 금요일(5일) 폭락장에 강씨는 신용거래로 주식에 몰빵했다. "폭락장 3일에 주식을 사라는 주위의 조언에 그만…."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퇴직금으로 중간정산받은 7000만원을 신용거래로 1억7500만원어치 주식을 산 것.강씨로선 9일도 전날에 이어 보유주식의 가격이 10% 가까이 폭락하면 담보부족으로 강제로 주식을 팔아야 한다. 3일 만에 투자한 7000만원 중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오전 9시.반등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전날 미국증시 폭락 소식에 증권시장 개장과 함께 폭포수가 쏟아지듯 매물이 나왔다. 코스피지수는 60포인트 이상 밀린 1807 언저리에서 출발했다.

강씨의 주식도 힘없이 무너졌다. 장이 열리자마자 전날보다 6% 하락했다. 사흘 만에 강씨의 주식은 30% 이상 빠졌다. 주가가 40% 빠지면 강씨는 한 푼도 건질 게 없다. 당장 팔아도 건질 수 있는 현금은 고작 몇 백만원.순간 두 아들과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장에 공포가 엄습하며 지수는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강씨처럼 신용으로 미수거래를 한 개인들의 강제매매가 증권사 곳곳에서 이뤄지며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다.

오전 11시.절망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낯익은 거래증권사 직원의 번호였다. 이미 강씨의 원금(7000만원)은 담보가 부족했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 강씨의 보유 주식가치는 2000만원.추가 하락시 담보가치가 없어질 것을 우려한 증권사 직원이 반대매매를 권유하기 위한 전화였다.

강씨 책상 위에 켜진 컴퓨터 모니터엔 지수그래프가 17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시장은 파랗게 질렸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엔 소리없는 비명이 난무했다. 강씨가 받아든 수화기 저편에선 주식 처분을 강력히 요구하는 증권사 직원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낮 12시.'이대로 끝나는 건가'.전날 증권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魔)의 점심시간'이 시작됐다. 전날 투자자들이 자리를 비운 한 시간 만에 지수가 무려 140포인트까지 급전직하했던 것.강씨는 모든 걸 체념했다. 회사 밖으로 나와 늦둥이 낳고 끊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17년 직장생활로 번 중간 퇴직금 7000만원이 담배연기처럼 공중에 흩어지고 있었다.

오후 1시.반전이었다. 혹시하는 기대에 컴퓨터를 다시 켰다. 절망의 긴 터널끝에 빛이 보였다. 모든 걸 포기한 채 자리에 앉은 강씨는 눈을 의심했다. 지수가 최하점(1745포인트)을 찍고 60포인트나 반등했다. 인터넷에선 대만 증시도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반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낱같은 희망은 사실 여부 확인을 떠나 급속히 퍼져나갔다. 9일(현지시간) 벤 버냉키의 경기부양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소문을 누리꾼들이 퍼다날랐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아섰다. 10% 넘게 빠졌던 강씨의 주식도 힘겹게 살아났다. 그동안의 하락을 만회하려는 듯 손실폭을 줄여나갔다.

오후 3시.지수 1800을 지키며 장이 마감됐다. 강씨의 주식 종가도 2% 하락에 멈췄다. 하지만 강씨는 내일(10일)이 더욱 불안하다. 소유 주식이 3일 연속 하락해 장중에 일부 주식이 강제 처분됐다. 10일이면 신용 거래 4일째다. 강씨의 선택은 많지 않다. 이날 은행마감까지 손실분을 현금으로 메워넣든지,10일 오전 9시 시초가에 반대매매를 당하든지.강씨에겐 잔인한 선택만 남았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