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 경제는 항암요법 같은 극약처방이 필요한 상태까지 왔다. "

캐나다 최대 방송사인 CTV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이렇게 평가했다. 응급실에 환자는 왔는데 적절한 치료약을 찾을 수 없고 진통제도 듣지 않는 상황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쏟아부은 수조달러의 정책자금과 정치적 노력이 허사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경기회복에 찬물

지난 70년간 끄떡없던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최고 등급(AAA)에서 한 단계 아래 등급(AA+)으로 강등됐다는 사실 자체는 국채를 매입하는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채 투자자들은 원리금 상환을 따지게 되는데 그 척도가 신용등급이다. AAA는 원리금을 상환받을 가능성이 극도로(extremely) 높은 '최상(prime)',AA+는 그 가능성이 매우(very) 높은 '우량(high)' 등급으로 보면 된다.

사실상 두 등급 간 큰 차이는 없지만 불안해진 미국 안팎의 투자자들이 미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매입해 자금을 대는 조건으로 이자를 더 높여 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체이스 등은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 국채 금리가 연 0.5~0.7%포인트 상승할 경우 연방정부의 차입 비용이 1000억달러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S&P는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미진하면 2년 안에 신용등급을 이같이 더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의 존 챔버스 국가신용등급 담당 전무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6개월에서 2년 내에 미국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3분의 1 정도"라고 말했다.

국채 신용등급은 기업이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채와 소비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활용하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학자금 대출금리,신용카드 대출금리를 밀어올릴 수도 있다. 이들 금리는 기준 금리인 국채 금리에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이다. 연방정부,기업,가계 등 경제 전반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져 투자와 소비라는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S&P는 신용등급 하락이 미국의 경제 성장을 0.25~0.50% 둔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경제는 지난 2분기에 1.3% 성장하는 데 그쳤다. 경기 위축은 주가 하락과 일자리 감소로도 이어진다.

◆글로벌 자산 대이동 가능성

국제 금융시장에선 AAA급 채권은 담보로 사용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국채는 전체 AAA급 국채의 59.3%에 달한다. 미국 국채를 담보로 썼던 투자기관은 담보를 보충하거나 대체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글로벌 자산시장에 단기적으로 큰 자금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무위험 자산이 없는 초유의 사태에 투자기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투자 결정을 할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보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달러 약세가 심화되면서 각국이 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선 현금비중을 높이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단행,단기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인 핌코의 엘에리안 CEO는 6일(현지시간) 언론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어떤 국가도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기능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약해진 기업과 소비자들의 자신감을 더욱 위축시켜 경제성장과 고용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