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쟁ㆍ과학ㆍ소비…서구문명엔 '킬러 앱'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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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라이제이션 / 니얼 퍼거슨 지음 / 구세희 외 옮김 / 21세기북스 / 572쪽 / 2만2500원
정치·자본주의 등 제도적 우위…中 부상에 패권 지속될지 관심
정치·자본주의 등 제도적 우위…中 부상에 패권 지속될지 관심
15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사는 곧 '동쪽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세계 10대 도시는 거의 동양에 있었고,중국이 압도적이었다. 명나라 영락제가 편찬한 《영락대전》의 분량은 1만1000권이 넘었다. 2007년 위키피디아가 부상하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사전이었다.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완성한 자금성은 세계 최고 문명의 상징이었다. 당시 서구,즉 유럽은 보잘 것 없었다. 열 개의 유럽 왕국은 세계 영토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데 불과했다. 인구는 16%,경제 산출량은 5분의 1을 조금 넘길 뿐이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상황은 역전됐다. 1900년의 10대 도시는 거의 서구의 도시다. 1913년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세계 영토의 58%,인구의 57%,국내총생산의 79%를 차지했다. 지금은 미국이 유일한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는 물론 비경제 분야에서도 서구의 표준을 따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서구의 패권은 영원할까. 불과 한 세대 만에 붕괴한 고대 로마제국처럼,양이(洋夷)의 총과 포,칼에 유린당해 무너진 중국처럼 어느날 급작스레 지배권을 잃지는 않을까.
《시빌라이제이션》은 미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니얼 퍼거슨이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쓴 책이다. 서구가 동양을 제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을 제시하고,그 속에서 서구의 몰락 가능성도 들여다본다. 그는 경쟁,과학,재산권,의학,소비,직업윤리 등 여섯 가지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구 패권사를 설명한다.
그는 서구 우위를 가속시킨 첫 번째 요인으로 항해시대를 촉발한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각기 경쟁자보다 앞서나가는 것이 절실했다. 그 과정에서 군사 경제 무역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이 이뤄졌다. 중국과 같은 거대왕국이 출연할 개연성이 차단됐기 때문에 해외에서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분열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유교의 '안정화 윤리' 때문에 경쟁적인 제도상의 뼈대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요인도 그렇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기까지 과학분야의 주요 혁신은 모두 서유럽에서 일어났다. 국가권력과 종교가 분리된 유럽에서는 이들 과학기술이 무기 등의 개발로 이어졌다.
정교일치 사회였던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와 과학적 진보를 조화시키지 못했다. 지도제작,의학,철학,수학,광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파됐는데도 말이다.
그는 소비사회도 서구의 패권을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서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 좋은 물건을 더 많이 더 싸게 만들었다. 그 체제의 역동성이 서구 외의 다른 세계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인이 입고 있는 청바지 패션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구의 가장 위대했던 두 차례의 경제도약,산업혁명과 소비사회는 의류와 관계가 깊었다"며 "서구식 옷차림의 확산은 서구 생활방식의 확산에서 분리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요인들 덕에 가능했던 서구의 우위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문명이란 상호작용하는 무수히 많은 요소로 이뤄진 복잡계여서 어느 결정적인 순간,아주 작은 동요 탓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패권을 가능케 한 여섯 가지 요인들은 이미 다른 세계에서도 볼 수 있으며,특히 중국의 부상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서구사회 내부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서구문명의 우위에 조심스레 손을 들어준다. "서구문명은 단품이 아니라 자본주의,정치적 다원론,생각의 자유 등이 들어있는 일종의 패키지"라며 "여전히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보다 제도적 강점을 풍족히 누리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