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막판 협상이 일부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모면한다고 해도 미국은 상처 투성이로 남는다. 미국의 자존심인 달러는 국제 기축통화라는 위상이 무색해졌다. 미국 국채 신용등급은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강등 경고를 받는 상황으로 몰렸다. 디폴트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미국이 단기간에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

달러 위상 추락ㆍ신용등급 흔들…美 디폴트 면해도 '후유증'
미국 연방정부가 부채한도를 계속 늘려야 하는 이유는 만성적인 재정적자 때문이다. 해마다 부족한 지출액의 40%는 빚을 내서 충당해왔다. 백악관은 올 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 세수가 2조1740억달러지만 지출해야 할 돈은 3조819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1940년 이후 부채 한도가 78번이나 증액됐으나 이번처럼 여야가 벼랑 끝 협상을 한 것은 드물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대선(11월)이 끝나는 내년 말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부채 한도를 일시에 2조4000억달러 증액하자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올해 말까지 1차,내년 초까지 2차로 나눠 2조5000억달러 증액하자는 안으로 맞섰다.

양측의 팽팽한 대치는 내년 대선과 의회 선거를 의식한 정치게임의 성격이 짙다. 공화당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최대 지출 요인인 노인층과 저소득층 대상의 사회복지비를 크게 삭감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부유층과 석유업체 등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폐지해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상처받은 달러와 국채

여야 간 부채한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달러 가치는 요동치고 있다. 엔화 스위스프랑 등은 달러 대비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거나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혀온 미국 국채도 비슷한 처지다. 미국은 최고등급인 국채 신용도를 발판 삼아 저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내왔다. 국채라는 우량 신용카드만 믿고 대출로 지출을 계속해온 셈이다. 그러나 부채한도 협상 교착을 계기로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이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면서 3개월 안에 최고등급인 AAA를 박탈당할 확률이 50%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부채가 더 늘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10년간 최소 4조달러(4230조원)의 재정적자 감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의회가 3개월 안에 충분한 수준의 감축안에 합의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내일이라도 미 국채 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경제엔 어떤 영향

국채 신용등급이 불안하면 국채 수익률인 금리가 불안하다. 수익률이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신용카드 금리,학자금대출 금리 등이 따라서 상승한다. 결국 가계의 이자부담이 늘어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조달비용이 늘면서 기업들도 투자와 고용을 줄여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가 빠른 성장세를 회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지난 1분기 0.4%에 불과했던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는 1.3%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주택 경기는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도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연방정부가 디폴트에 빠지지 않으면 경기를 짓누르던 악재 하나가 사라질 뿐이다.

워싱턴=김홍열/뉴욕=유창재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