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李대리] "김과장, 잠깐 내 방으로 올라오시게…트위터에서 내 욕한 것 다시 해볼래?"
중견 제약업체인 A사 기획팀 직원들은 트위터 접속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팀장을 맡고 있는 정 부장에게 '트위터 문안인사'를 건네기 위해서다. "어제 회식 끝나고 다들 잘 들어갔나","오늘은 날씨가 덥군"이라고 정 부장이 글을 올리면 팀원들은 "더워서 땀이 많이 납니다","점심 시간 때 아이스크림 하나씩 어떨까요"라는 식으로 답글을 단다.

내용만 놓고 보면 훈훈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팀원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다는 답글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정 부장이 트위터를 시작한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부급 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혁신대회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성화 아이디어를 들은 그는 바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회의 때마다 팀원들에게 답글을 '강요'하고 있는 것.팀원인 강 대리는 "상사 비위를 맞추는 용도로 이용하다보니 SNS는 또다른 족쇄"라며 "팀원들끼리 각자 다른 내용의 답글을 다느라 고민하는 것도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는 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도구로 각광받고 있지만,김과장,이대리들에게는 SNS도 직장 생활의 연장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SNS를 통해 마지못해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자신의 사생활까지 노출되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고 만다. SNS가 'Senior & Slavery(상사와 종살이)'의 약자라는 시니컬한 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상사의 SNS,'무한 아부 모드'

[金과장&李대리] "김과장, 잠깐 내 방으로 올라오시게…트위터에서 내 욕한 것 다시 해볼래?"
기계장비업체인 B사에서 일하는 임모씨는 SNS와 관련해 아찔한 기억이 있다. 이 회사는 오너가 SNS를 좋아해 사내에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사용이 보편화돼 있다. 작년 가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임씨는 '처음 만나는 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상사들의 트위터에 답글을 달고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이 습관이 됐다. 문제는 작년 11월 옆부서 부장의 페이스북에 새 글이 올라오자 '좋아요'부터 누른 것이 화근이었다. 글을 읽어보니 "외동딸이 어제 수학능력시험을 망쳐 기분이 나쁘다"는 내용이었던 것.임씨는 "부랴부랴 그 부장에게로 달려가 싹싹 빌었다"며 "'SNS 아부'가 생활화돼 있다가 보니 생긴 일 같다"고 씁쓸해 했다.

승진을 앞둔 물류 업체 직원 유 과장은 퇴근 시간마다 사장의 트위터를 체크한다. 사장이 갑자기 "저녁 먹을 사람 모이라"며 트위터를 통해 '번개'를 날리는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가을 인사를 앞두고 한번이라도 더 눈도장을 찍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나 대신 경쟁자가 저녁자리에 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SNS는 또다른 족쇄

전자 부품회사에 근무하는 하 대리는 2년 넘게 이용하던 트위터를 접고 블로그로 돌아갔다. 주말에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 이야기를 트위터에 쓰면 다음날 오지랖 넓은 팀장은 "주말이라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다음주 업무에 영향을 준다"며 '훈계'를 해댄다. 여자친구 생일선물로 산 보석반지에 대해서는 노총각 선배가 "결혼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쓴거 아니냐"며 딴지를 걸어온다. 하 대리는 "SNS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사생활을 보장 받는 블로그가 차라리 편하다"고 푸념했다.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는 백 과장은 지난주 페이스북 친구로 설정된 담당 이사가 복도에서 마주치자 대뜸 "그런 이야기는 좀 지저분한 것 아니야"라고 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백 과장에게 그 이사는 열흘 전 백 과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화장실 관련 에피소드를 거론했다. 백 과장은 "온라인 상으로는 1주일 넘게 한마디 이야기도 안하다가 '오프라인'상에서 그런 식으로 반응하니 나를 말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등골이 오싹했다"고 털어놨다.

◆직장인의 SNS는 '직장의 것'?

회사 편익을 위해 'SNS 사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 증권사 신입직원인 조모씨는 회사 트위터에 '얼굴 사역'을 하고 있다. 회사가 트위터 마케팅을 위해 계정을 만들면서 신입직원 중 외모가 가장 출중했던 조씨의 사진을 메인으로 쓴 것.조씨는 "민망한 것은 둘째 치고,사내에서도 모르는 직원에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해 불편하다"며 "후배들이 들어올 때까지 회사 트위터 사진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팔로어가 수천명에 달하는 의류업체의 정모 사원은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마케팅팀장의 전화를 받는다. "신상품을 조금이라도 많이 알려야 하니 트위터에 사진과 상품 내용을 게재하라"는 사실상의 '지시'다. 팀장도 트위터 팔로를 하고 있으니 그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의 SNS를 상사에게 알리지 말라"

SNS활동을 직장에 알리는 것이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보니 이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광고업체에 다니는 강모사원은 공적계정 외에 영어 이름을 사용한 사적계정을 별도로 열어놓고,친구들과는 사적계정을 통해 '지하활동'으로만 연락한다.

출판사 직원 윤 대리는 SNS에서 '상사 관리'를 잘못했다 낭패를 본 케이스다. 블록 설정을 해놓은 것을 믿고 트위터에서 "왜 이렇게 지루한지 모르겠다","오늘 점심은 상사들 따라 갔다가 맛 없어서 혼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올렸다. 그러던 어느날 윤 대리는 낭패를 보게 됐다. 스마트폰 사용에 미숙한 상사가 자신의 스마트폰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확인하는 대신 컴퓨터에서 일일이 상대방 트위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내용을 확인해 왔는데 블록 기능이 컴퓨터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뒤 상사는 윤 대리를 따로 불러 묵직한 톤으로 이렇게 한마디했다. "불만 있으면 면전에서 하라"고.

노경목/윤성민/고경봉/강경민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