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6) 교토대, 대학원생에 5억원 장비 '척척'…"연구에만 매진해달라"
[STRONG KOREA] (6) 교토대, 대학원생에 5억원 장비 '척척'…"연구에만 매진해달라"
작년 말 교토대의 잡지 동아리 'chot better'가 학생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수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14개를 선정했는데 그 중에 8개가 과학 관련 수업이었다. 예컨대 지진학의 권위자인 가마타 히로키 교수의 '지구과학입문1'은 매 학기마다 수강생이 200~300명에 달할 정도다. 학생의 절반 이상은 비(非)전공자들이다.

교토대 한인유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전혜연 씨(23 · 경영학 4년)는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줘 소감과 질문을 받고 이를 토대로 매번 강의 주제를 바꾸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마타 교수 강의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수업들도 한국에서라면 폐강을 면치 못했을 법한 것들이다. 문과용 기초과학A,약용식물학,시각과학A,신경과학의 기초,운동의 과학,미각과 기호의 과학,휴먼인터페이스의 심리와 생리 등이 인기 수업으로 선정됐다. 교토대는 1949년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를 비롯해 총 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간사이 지방에서 교토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사카대.지난 20일 기계공학과 정보실습실에서 석사 1년차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 속 숫자의 조합을 한창 들여다보던 이토 아즈사 씨(24)는 "피아노선을 만질 때 나오는 주파수를 프로그램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 교수인 시부타니 요우지 씨는 "이 수업에선 테크닉이 아니라 과학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은 한두 시간을 들여 기초적인 것만 배우고 나머지 수업 시간은 학생이 직접 주제를 선정해 이를 해결하는 데 할애한다"는 것이다.

◆연구중심 일본 대학의 경쟁력

[STRONG KOREA] (6) 교토대, 대학원생에 5억원 장비 '척척'…"연구에만 매진해달라"
이공계 위기라는 측면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병증을 앓았다. 공대 지망생 수는 1992년에 정점을 찍고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에 따르면 2009년 70여만명의 연구자 가운데 많게는 3분의 2가량이 의 · 약 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은 작년 2명을 포함해 총 1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일본 대학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일본 로봇공학의 대가인 이시구로 히로시 오사카대 교수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엔지니어링 중심의 기술 발전에 온 힘을 집중했다"며 "하지만 미래를 잡기 위해선 테크닉(technic)이 아니라 과학(science)이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과학사를 전공한 김범성 히로시마공대 교수는 "일본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원천 기술을 배운 다음 이를 빠르게 산업계에 적용해 돈을 벌었다는 무임승차론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며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 1999년엔 일본 중북부 이시가와현 노미(能美)시에 호쿠리쿠 첨단 대학원 · 대학이란 파일럿 학교를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구 중심을 표방하는 호쿠리쿠대는 모든 교직원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급은 정교수,준교수,조교 순으로 내려가는데 한국 대학처럼 조교가 교수에 종속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가장 직급이 낮은 조교가 학생을 한 명도 가르치지 않아도 1년에 연구비로 2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교토 · 오사카=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