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이달 말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정세의 관심에서 보면, 북한이 중국에 기운 듯한 행보를 최근 보이고 있지만 이른바 '줄다리기'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연결고리를 과시하려는게 아니냐는게 외교가의 시선이다.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9일부터 내달 1일 사이에 블라디보스토크을 방문해 내년에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고, 김 위원장은 30일께 북러 국경을 건너가 정상회담을 벌일 것이라는 징후가 포착됐다.

러시아 극동 지역 치안당국자가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에 설명했고, 회담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 교외나 북러 국경 지대인 하산 지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전에도 김 위원장의 방러설이 나왔다가 소문에 그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실제로 러시아를 방문할지는 미지수지만, 이 같은 보도는 최근 김 위원장의 행보와 관련해 시선을 끌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방러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지난달말 투먼(圖們)에서 시작해 양저우(揚州), 베이징(北京)까지 무려 6천여㎞를 달린 특별열차 방중 대장정 퍼포먼스를 벌인 직후라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일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 시점을 골라 중국을 방문했지만, 지금까지도 방중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경제건설 등을 거론했고, 그 직후에 북중 경제협력을 상징하는 사업인 황금평 개발 착공식과 라선 경제무역지대 착공식이 열렸다는 점에서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고,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려는 다목적 포석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을 뿐이다.

김 위원장의 방러가 실현될 경우 북러 정상회담의 주제도 6자회담의 재개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대북 경제 원조 등 다방면에 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중·러 국경지대에 있는 라선 경제무역지대 개발에도 러시아를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미 라선시에 일부 자금을 투자한 러시아도 김 위원장에게 '라선시 투자 확대'라는 선물을 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김정은 후계체제와 관련해서도 주목되지만,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상대로 직접 후계 문제를 거론할지는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적으로는 김 위원장이 방중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서둘러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경제 원조라는 '실리'를 취하는 한편, 중국이 요구하는 개혁개방에 러시아를 끌어들여 나름대로 외교적 균형을 취하는 '일석삼조'를 노리는 것 으로 추측된다.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