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학의 자유는 이룰 수 없는 꿈인가?
반값 등록금으로 연일 시끄럽다. 논란을 지켜보면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대학은 열등감의 핵이다. 미국이나 유럽,일본 등 다른 나라의 대학보다 우리 대학들의 실력이 처진다는 인식을 우리 사회는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실력도 없는 것들이 문제만 일으킨다는 눈 흘김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대학은 세계 최고가 되어야만 대학인가? 적어도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인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대학에 가해지고 있는 반(反)지성적이고 반학문적인 구속과 압박의 저변에는 세계의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대학에는 뭔가 달라보여야만 하고,뭔가 특이하고,제목이라도 뭔가 섹시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도를 넘어 이제는 제 정신이 아니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 언론과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주요 신문사마다 마치 미인대회 하듯이 대학 평가라는 것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학을 평가하는 항목을 보라.그들의 평가에서는 대학 캠퍼스가 얼마나 넓은가가 중요하고 건물의 평수가 문제가 된다. 학교에 대한 평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평가하는 졸업생의 스펙과 충성도까지 계량화해 반영한다.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정부가 지원금을 배분할 때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기준과 정부 지침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도대체 좋은 대학이라는 것이 넓이와 부피와 졸업생의 스펙,그리고 정부 지침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인가? 그와 같은 인식이 지배할 때 대학이 추구해야 할 것은 넓이와 부피와 스펙,그리고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지난 10여년간 우리 대학이 한 일은 언론과 정부,사회가 요구한 바와 다르지 않다. 재단으로부터의 전입금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등록금 올리고,정부에 아첨해서 지원금을 많이 받아 넓이와 부피,스펙을 키운 것이다. 그와 같은 빛나는 노력 때문에 세계 대학 평가에서 우리 대학들의 순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되었는가?

결국은 대학의 본질을 망각한 언론과 정부,그리고 사회 인식 때문에 대학은 이상한 집단이 되고 등록금은 서민이 부담하기에 버거운 수준이 돼 버린 것이다. 반값 등록금,제도만 바르게 설계한다면 반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반값 등록금이 결국 언론과 정부의 대학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춰 판단하건대 대학 재정의 반을 정부가 지원한다고 할 때 정부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이라고 보는가. 비록 대학에 대한 지원이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온갖 꼬리표와 규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대학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하는 집단이다. 대학에서의 자유는 주로 사고와 꿈에 관한 것이지만 때로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방종에 가까운 행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때 대학은 기성품을 재생산해 내는 이상한 기관으로 전락한다. 누군가 대학에 지령을 내리기 시작할 때 대학은 타락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대학의 타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지루하기까지 하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반값 등록금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통해 떨어질 언론과 정부의 대학에 대한 지령과 자유의 검열이 두렵기까지 하다. 꿈꾸는 자유를 제약하는 반값 등록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우리에게 대학의 자유는 정녕 이룰 수 없는 꿈이란 말인가?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