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한창인 22일 저녁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모던 발레 '구로동 백조'의 30분짜리 공연이 끝나자 극장 앞에 예정에 없던 사인회 행렬이 만들어졌다. 관객들이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무용수도,발레단장도 아닌 안무가 김경영 씨(38 · 사진)였다.

위트 넘치는 발레 동작과 창의적인 소품,강렬한 메시지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그를 공연이 끝난 후 분장실에서 만났다.

"요즘 사람들은 '백조'라고 하면 아름다운 성과 호숫가를 배경으로 사랑을 위해 몸부림치는 지그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공주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방황하는 청년 실업자를 먼저 떠올리죠.여자 백수를 가리키는 중의적 의미의 신조어가 됐잖아요. "

'구로동 백조'에는 1명의 발레리노와 6명의 발레리나가 등장한다.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원곡을 편집해 사용했다. 흰색 로맨틱 튀튀를 입고 등장한 백조들은 현실에 부딪쳐가며 쓰러지고 주저앉는다. 무용수들 여럿이 바닥에 흩어진 티셔츠들을 아무렇게나 겹겹이 끼어입을 때,관객들은 자아를 상실한 채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20대의 모습을 연상한다.

백조의 호수에 등장했던 나팔수 대신 한 명의 발레리나가 빨간색 확성기를 들고 나와 코믹한 장면을 연출했고,냉장고와 세탁기,대형 선풍기와 자전거 등 일상 소품들이 장소를 규정했다. 막이 내려갈 땐 희극성이 강한 동작으로 마무리하며 '그래도 끝나지 않은 희망과 웃음'을 선사했다.

"어느 날 억울한 부당해고와 청년 실업 실태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한 여성이 청와대에 부당해고를 고발하는 기고문을 올렸죠.글의 끝에는 '27/백조/구로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직업을 찾아 헤매고 있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소품은 사당2동에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주워온 거예요. 아파트마다 월요일이면 못 쓰는 재활용품을 내놓잖아요. "그는 어릴 때 발레를 시작해 20대 후반까지 국립발레단 객원무용수로 활동했다. 2001년 호주 퀸즐랜드대로 안무를 배우러 떠났다.

"발레라는 예술이 잔인해요. 될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어요. 친구들은 입단도 하고 해외 무용단에도 나가고 잘 풀리는 것 같은데,저는 무용수로는 안되겠다 생각했죠.발레를 포기할 순 없었고,그때 안무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호주로 떠났죠.호주는 유럽보다 언어 장벽이 낮은데다 무용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 다른 문화권의 아이디어를 쉽게 받아들이는 나라였어요. "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안무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평론가가 뽑은 최우수작품상,춤비평가협회 작품상,서울무용제 안무대상 등을 휩쓸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사진과 증언집에서 영감을 받은 '826번째 외침',공동주택에 사는 이웃과의 순간을 풀어낸 '207동 1222호' 등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그는 요즘 한국무용에 관심이 많다. 발레와 한국무용이 동시에 가진 숙제를 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서양에서 온 발레와 우리의 무용은 고전 레퍼토리여서 창작이 상대적으로 적죠.우리가 영국 로열발레단을 흉내낼 수 있지만 그들을 뛰어넘을 순 없어요. 한국무용은 가장 세련된 모습으로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두 장르를 결합하는 게 저의 숙제입니다.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